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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15 in Shang-hai] 예원

그의 해외발자취/[2007] 상해,항주,소주

by 그라나도 2007. 8. 2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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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첨부된 소개에 따르면, 뭐 각각의 장소에 다 이름이 있는 듯 한데, 그냥 습하고 더운 날씨에 돌아보느라 몰랐고 패키지라 그런지 스스로 그 곳을 찾아가 볼 수도 없는 탓에, 뭐가 뭔지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이드가 제대로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처음 내리고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참고로 어머니는 큰 형과 함께 2005년에 상하이-항저우-쑤저우 여행 보름정도 갔다 오셨다) 원래 예원입구에는 고급 상가들이 즐비해 있는데, 우리가 내린 곳은 일종의 슬럼가 같은 뒷쪽에 내렸다고 하신다.
아무래도 패키지 여행사 지그들이 장사 하기 위해, 자기네들과 교류하는 특정 상점에서 물건을 사게 해야 하니 여기서 못사게 할려고 그랬나 보다. 여행사들의 상술이란....
또다시 패키지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지고.

그 일종의 슬럼가 같은 뒷골목에는 노점상. 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으음... 물건을 들고서 파는 사람들과 거지들이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런 사람들은 다 시골 농민이라고 하더라.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다 보니 자유롭게 거주지를 이동할 수 없고, 직업 또한 바꾸기 힘든데, 시골의 농민들이 돈을 벌기 위해 상하이로 올라와 보니, 직업을 가질 수 없는 탓에 구걸하거나 발품을 팔며 물건을 판다고 한다.
참 보기에는 딱하지만 이게 농사 짓는 거 보다 더 번다고 하니... 허 참.

아무래도 상하이-항저우-쑤저우로 한국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그런지, 그 물건을 들고서 파는 사람들은 'X개 천원'이런 식으로 한국말로 팔려고 하더라.
이렇게 물건을 팔던 사람들 중에 생각 나는 것은, 바로 MONTBLANC 社의 Starwalker 만년필 짝퉁을 파는 사람이었다.
그 길로 가고 있을 때, 앞에 가는 사람에게는 '한 개 만 원' 하더니, 우리 즈음 되니깐 '한 개 천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_-;;
필자가 필기구 콜렉터라서 중국의 만년필 제조사인 (이래뵈도 한국 회사들보다 더 고급인 회사들도 있다) HERO, DUKE, Furiwen등을 찾는다고 그다지 눈길을 주지 않았는데, 어짜피 패키지라 파는데를 찾지도 못했고(중국 거주 중이신 만년필 콜렉터 두 분의 말씀으론, 할인 마트에 있다고 하시더라) 학교 친구들 중 일부 콜렉터인 녀석들에게 선물로 몇 개 사다 줄 껄,, 하는 아쉬움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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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몽블랑 만년필 짝퉁과 진퉁 구별법.
뭐, 매니아쯤 되면 보기만 해도 알겠지만, 그냥 패션 아이템으로 들고 다니시는 분들은 구별 못할테니 필자가 아주 간단하게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만년필의 닙(Nib, 촉)에 보면, 진퉁은 바깥쪽이 골드이고, 안쪽이 로듐 도금이 되어 있으며, 4810이라고 음각으로 각인 되어 있다. (몽블랑 산의 높이)
짝퉁들은 대개 슈미트 社의 닙인데, 이 경우 iridium point germany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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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게 사진 뿐이었던가...
갔을 당시는 한국보다 더 높은 기온에 더 높은 습도 탓에 온 몸에 힘이 빠져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못해, 아름다운 외관을 보고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기행문을 쓰며 사진을 다시 돌아보니, 내가 확실히 중국의 미가 느껴지는 정원에 갔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원의 모습을 어떻다고 할까?
내가 좋아하는 '김용' 씨의 소설이 Motive가 된 중국 무협 드라마들에서 배경이 되어 왔던 그런 느낌의 정원이라고 할까?
최근의 무협 드라마의 화려한 정원이 아닌, 95년 이전 쯤에서나 볼 듯한 그런 아담한 사이즈의 정원.
얼핏 '기와'라는 점에서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 할 수도 있으나, 절대 한국과 같지 않은, 그런 중국만의 미를 지닌 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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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 본원에서 나와, 바로 다시 뒷길로 가 버스를 탄 게 아니라, 그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고급상점'이 즐비한 앞길로 나와서 뒷쪽으로 돌아서 가게 되었다.

이 앞쪽의 '고급상점'들은 정부에서 간접적으로 관여가 됬는지, 직접적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예원 본원의 건축 양식과 동일한 건축 양식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관광 명소들이 주변 상점들로 인해 망해 가는 것에 비하자면, 이런 점에 대해서 중국은 무서운 나라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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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자료
예원.
상하이 제일의 볼거리.
'예원을 보지 않고서는 상하이를 본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지라고 한다.
명청대의 대표적인 강남 정원으로, 쑤저우(소주)의 4대 정원과 하께 강남명원으로 손꼽힌다고한다. 정원이 처음 조성된 것은 1559년, 명나라의 관료였던 반윤단이 아버지 반은의 노후를 위해 무려 18년간 건설했다고 한다. 건설 당시 부터 호사가들의 주목을 받았을 정도로 화려함을 특기로 하는데, 가장 인상적인 볼거리는 용 모양으로 조각된 담장. 용이 날아오를 것만 같은 곡선의 담장은 예원이 가진 건축적 파격미의 상징이라고 한다. 하지만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용 조각을 개인정원에 활용한 것이 수많은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고 한다. 실제로 반윤단은 당대의 세도가로 막대한 권력을 쥐고 있었는데, 급기야 황실은 반윤단이 황제가 되려는 정치젹 야심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정치적 위기에 몰린 반윤단은 진짜 용은 발톱이 5개이지만, 담장 위의 조각은 3개라는 점을 강조하며, 용과 닮은 꼴의 다른 짐승이라고 주장해 목숨과 관직을 부지하기에 이른다.
그러부터 300년 후, 홍수전에 의해 태평천국의 난이 발생했을 때, 반란군은 예원을 지휘본부로 선택했다. 이른바 발톱 5개달린 용이 있는 베이징과 함께 발톱 3개 달린 용이 있는 상하이의 싸움이 된 것, 반란은 태평천국군의 패배로 끝나고, 반란군의 지휘 본부인 예원은 나라 정부군에 의해 참담하게 파괴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40년대 중반 중국 정부에 의해 복원된 것이다. 용 담장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예원의 볼거리가 곧 용담장만은 아니다. 반윤단의 아버지가 매일 밤 회춘용 기생을 간택했다는 점춘당, 가로 2m 세로 3m 규모의 보석 병풍을 볼 수 있는 회경루, 상하이 전통 연극을 감상했다는 고희극대는 아룸다운 외관을 자랑하는 예원 최고의 건축물들이므로 반드시 감상하자. 예원 근처의 쇼핑 포인트인 예원상장과 자오지에를 같이 둘러볼 수 있는데, 이 경우 최소 3~4시간은 할애해야 한다.

따로 백과사전을 찾을 수 없어서 http://blog.naver.com/sirif/30021033419 이 글중 일부를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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