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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1/집안] 대제국의 도읍은 어디로 가고....국내성(國內城) 터

그의 해외발자취/[2012] 만주

by 그라나도 2012. 8. 20.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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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國內城)

현재의 환인 지역의 오녀산으로 추정되는 '졸본'에 이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고구려 제 2대 유리명왕 때인 서기 2년 국내성으로 천도한 뒤 장수왕이 427년 평양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고구려의 수도였던 곳으로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환도성'은 별개가 아니라 국내성 근처에 있는 환도산성으로 생각하여 오랜기간 고구려 사회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고구려가 멸망하던 시절, 연개소문의 아들인 남생은 두 동생에게 저항하기 위해 국내성을 거점으로 대항하다

견디지 못하고 당에게 항복함으로써 고구려의 영토에서 떨어져 나갔었다.



국내성은 원형이 많이 손상되었으나 내·외벽을 잘 다듬은 네모뿔의 돌로 쌓은 석축성으로 평면은 사각형이다. 

동쪽 성벽의 길이는 554.7m, 남쪽 성벽의 길이는 751.5m, 서쪽 성벽의 길이는 715.2m이며, 둘레는 2,686m이다.


성문은 여섯 곳이 있는 것으로 발견되었는데, 남쪽과 북쪽에 하나씩, 그리고 동과 서에 두개씩 있었다고 한다.

또 이러한 석축성이 축조되기 이전에 토성이 존재했음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런 국내성의 모습은 흔히 고등학교 국사 책에서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 국내성 성벽 위에 아파트가 지어져 있나라고 볼 수도 있으나

그런 것은 아니고 성벽 안쪽에 아파트가 있다.




국사책에 나오는 사진처럼 비교적 성벽이 잘 관리되는 곳도 있지만 이 모습처럼 여기저기 무너져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성곽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성곽 안에는 많은 사람들의 거주지가 있다.

정확하게 이 국내성 터는 당시 '성'만의 터 였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국내성이라고 불리우는

고구려의 수도 영역은 국내성과 환도산성을 포함하여 현재 집안현의 중심부 전체를 다 국내성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국내성 성 자체는 왕이 머무는 궁과 행정적/군사적 기능을 담당하는 곳이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발해상경용천부터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뭐 둘 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자긍심 넘치는 대제국이라는 것은 말할 바도 없지만,

상경용천부터는 그냥 발굴되는 터지만 국내성 터는 그냥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터전이되어 있다는 모습에서 오는 또 다른 의미의 괴리감...?

어찌됐든 간에 이렇게 우리 민족의 성터가 방치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Canon - Ixus 310 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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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JAE 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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