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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1/집안] 대륙을 호령한 태왕의 릉, 제 20대 장수왕릉 장군총(將軍塚)

그의 해외발자취/[2012] 만주

by 그라나도 2012. 8. 2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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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버스터미널 앞에서 택시를 대절했다.

이번엔 놓치지 않고 가격 협상을 해서 100위안에 장군총, 환도산성, 오호분오회묘, 국내성터, 광개토대왕릉비, 만포철교 구경까지 하기로 했다.

그러고 가장 먼저 간 곳은 바로 장군총.


집안에 있는 고구려 유적들은 중국이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해서 인정이 되어 있다.

장군총, 오호분오회묘, 광개토대왕릉비, 환도산성 터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 입장하려면 30위안의 개별 입장료가 있지만 100위안을 주고 통합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다.




중국에서 인증한 패와 세계문화유산 인증패.

우리 민족의 유산을 중국이 등록을 했다는 게 안타까우면서도 현재 중국 영토에 속해 있다는 슬픈 사실...





장군총은 정확히 누구의 무덤이라고 밝혀지진 않았지만,

대개 고구려의 20대 태왕인 장수왕의 무덤으로 말해진다.


제 20대 장수왕(長壽王) 거련

394년부터 491년까지 100년 가까이 살았다고 전해지며, 412년부터 491년까지 80여 년의 세월 동안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왕.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확장한 동북아 대륙의 영토를 당시 남북조의 혼란이 있었던 중국 사이에 다중 외교 전략을 펼치며

남북조 시대 200여 년 동안 북방에서 오랜 평화를 가져왔으며, 472년 평양성으로 천도하여 남하정책에 보다 더 집중해 현재의 충청지방까지 고구려의영토를 확대했었다. 또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공략해 제 21대 개로왕을 사로잡아 죽였다. 





무덤은 총 7개의 계단식 돌무지무덤으로 피라미드형을 띄고 있다.

한 변의 길이는 31.5m에서 33m 정도이고

높이는 14m 이다.


백제 신라는 물론, 고구려 역시 6세기 이후로는 굴식 돌방무덤의 형태로 변화했는데, 장군총은 그 이전 북방 고구려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인 적석총(돌무지무덤)의 형태를 띄고 있다. 장군총은 5세기 가량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는데, 중국에서는 장군총을 장수왕릉, 태왕릉을 광개토태왕릉으로 보고 있다.




무덤의 크기가 커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국사책을 보면서 느끼는 장군총의 크기도 그랬으니.

하지만 실제로 본 장군총의 크기는 상상하는 것과 달랐다.

상상했던 것은 그냥 조금 높이 있는 돌무지무덤이지만, 실제 장군총은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규모의

4배 이상의 크기였기 때문이다. 그냥 생김새 때문에 많이들 피라미드니 하겠거니 했지만

높이가 14m에 이르는 정말 거대한 피라미드였던 것.

과연 당시 고구려의 국력을 알만한 규모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훼손을 막기 위해 올라가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잘됐다. 감히 우리 조상님의 무덤이 남의 발에 짓밟히고 있는 모습은 분통이 터지기 그지 없기 때문이다.





왕릉 뒤쪽에 위치한 부장묘.

적석총 위에 고인돌이 있는 형태이다.

왕릉을 지키는 부장묘라고도 하고, 장수왕의 애첩의 묘라고도 한다.




장군총 앞에 보이는 북한 만포.

장수왕님의 영혼이 릉에 남아 있다면, 이제는 다른 민족의 땅에 앉아 벌거숭이 산이 되어버린

북한, 자손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실까 씁쓸하기도 하다.


한민족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였던 고구려 전성기 시기를 이끌였던 장수왕.

그리고 그 장수왕이 뭍혀 있다고 전해지는 장군총. 그 전성기만큼이나 엄청난 위용의 기상이 느껴지는 릉이었다.


Canon - Ixus 310 hs
ⓒ2012 Granado
LEE JAE 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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