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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5/심양] 만주족 제국의 잉태, 청 심양고궁(中)

그의 해외발자취/[2012] 만주

by 그라나도 2012. 7. 1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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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에서 대정전을 다 보고 뒤로 가면 있는 대청신운.

원래 어떤 용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청 시대의 도자기, 옥 작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당시 조선에서도 많이 보였던 청화백자




서양식 기법이 가미된 도자기





전부 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ㄷㄷ





이번엔 백옥...!!




동로에서 이렇게 뒤로 빠지는 길이 있는데




이렇게 심양고궁의 정원이 나온다.




곡식을 저장하던 창고.

제국의 궁이지만 잉태하던 시절이라 그럴까,

이런 소박한 모습도 눈에 띈다.





연못이 딸린 정원.

물론 현재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뒤뜰에서 중로로 올라가는 길,

숭정전이 아니라 정반대로 돌아서 나가는 루트를 선택하게 되었다.


중로는 청 태종 때 지어진 곳으로, 만주족 양식과 한족 양식이 섞여있는 형태이다.






청 황제의 거주지였던 청녕궁(淸寧宮)

심양고궁의 편액에는 한문 왼편에 만주족 고유의 언어인 만주어로 쓰여져 있다.


한자와 만주어로 함께 표기한 것을 '만한합벽체'라고 한다.  

청나라 시절 만주족이 문관이 되려면 반드시 만주어와 몽골어의 번역시험을 거쳤으며 모든 문서는 만주어 작성되고 중국어로 덧붙였다.  


그러나 현재 만주어는 사어(死語)에 가까워 2007년 조사에 따르면 동북 3성의 만주족 중 80세 이상 노인들 중 

겨우 18명 정도만 만주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만주족 중에 한마디의 만주어라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맞을 거다.  


이민족에게 침략 당했지만 결국 그 이민족의 문화까지 한족의 문화로 흡수시켜버린 한족들의 힘은 무시무시하다.

한족 옆에 어떤 의미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우리 역시 늘 우리 문화가 흡수되지 않게 눈을 번쩍 뜨고 있어야 할 것.





청 태종 시기에 황후가 연회를 열고 독서를 했다고 하는 봉황루(鳳凰樓)

청의 수도를 북경으로 옮긴 뒤에는 황제의 초상이나 보물을 보관하던 곳이다.

심양고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봉황루에서 바라 본 숭정전 방향




심양고궁의 정전, 숭정전(崇政殿)

대청문을 통해 들어오면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청 태종이 조회를 하고 외국 사절을 맞았던 곳이다.




해시계



숭정전 중앙계단





숭정전의 용상

용상 위 정대광명(正大光明)이라는 편액은

청 3대 황제 순치제(順治帝)가 쓴 편액이다.



숭정전 벽면에 용 조각




숭정전 뒷측


[심양고궁 다른 글 보기]

2012/07/16 - [Abroad/[2012] 만주] - [2012.07.05/심양] 만주족 제국의 잉태, 청 심양고궁(上)


2012/07/16 - [Abroad/[2012] 만주] - [2012.07.05/심양] 만주족 제국의 잉태, 청 심양고궁(下)



Canon - Ixus 310 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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