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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5/심양] 만주족 제국의 잉태, 청 심양고궁(上)

그의 해외발자취/[2012] 만주

by 그라나도 2012. 7. 1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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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 와서 가장 처음 가보게 된 곳은 청 심양고궁이다.

오랜 역사에 있어서 심양은 많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이라면

바로 청나라의 초기 수도로서 역할을 했던 심양이라는 도시의 모습일 것이다.


만주족의 국가로 시작하여 중국 전역을 장악한 정복 국가 청. 

그런 청이 아직 중국 전역을 장악하기 전, 새로운 제국의 발돋움이 강했던 곳이 바로 이 청 심양고궁이다.




1625년, 청 태조 누르하지가 동경에서 심양으로 후금의 수도를 옮긴 뒤,

대정전과 십왕정을 짓기 시작하였고, 1635년에 완공되었다.


1636년 청 태종 홍타이지는 한위(汗位)를 버리고 황제로서의 즉위식을 고궁에서 행했다.

청이 산해관을 넘어 북경을 점령한 이후에 청의 수도는 북경으로 옮겨갔으며 심양은 황제가 동북 지방을

순회할 때 머무르는 곳이 되었다.


규모는 자금성의 1/13이라고 한다. 2004년 UNESCO 세계유산인 베이징 고궁에 추가하여 명청황가궁전으로 확대 등재되었다.






입장권을 구입한 후, 정문인 대청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심양고궁의 전도.

심양고궁은 크게 서로, 중로, 동로 세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동로는 누르하치 시대부터 건립된 곳이고, 중로는 청 태종,그리고 동로는 베이징 천도 이후 지어진 곳이다.

동로에서는 파격적인 만주식 건축이 눈에 띄며, 중로에서는 만주식과 중국식의 혼합, 그리고 서로에서는 만주식보다는 중국식이 강한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대청문을 들어가면 중로의 숭정전이 바로 눈 앞에 띈다.

우리는 시대 순서로 움직이기 위해 바로 동로로 갔다.




건물 기둥을 이렇게 페인트칠하고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에 대해 관리함에 있어서 너무 막하는 것이 아닐까, 매우 아쉬움이 드는 모습이었다.




대정전과 십왕정

중앙에 보이는 큰 건물이 대정전이고

양 옆에 있는 총 10개의 건물이 십왕정이다.


십왕정(十王亭)은 원래는

좌익왕, 우익왕을 비롯하여 팔기의 부족장들을 위한 건물이었다고 한다.


대정전 우측으로부터 우익왕정(右翼王亭), 정황기정(正黃旗亭), 정홍기정(正紅旗亭), 양홍기정(鑲紅旗亭), 양남기정(鑲藍旗亭)이 늘어서 있고 대정전 좌측으로부터 좌익왕정(左翼王亭), 양황기정(鑲黃旗亭), 정백기정(正白旗亭), 양백기정(鑲白旗亭), 정남기정(正藍旗亭)이 배치되어 있다.



이후에 신하들이 쓰기 위한 건물로 바뀌었으며 현재는 여러가지 청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십왕정 각각의 내부에는 여러가지 청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넓게 볼 때는 같은 동북 민족의 핏줄을 가진 만주족답게,

우리 민족처럼 활이라는 무기를 많이 활용했었다.


사진은 다양한 촉을 가진 화살들






청의 만주팔기(滿洲八旗)

청이 중국 전역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해지는 군대 체제로서

농경 민족이 아닌 유목 민족이 중국을 정복했음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기동성이 뛰어난 군대


청 초기에는 각 기의 왕의 합의제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청이 중국 전역을 장악한 뒤, 만주팔기, 몽골팔기, 한군팔기 등 총 24기의 군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한 기에는 5개의 잘란, 그리고 각 잘란에는 5개의 니루로 나뉘고 한 니루 당 300명의 병사가 있어

한 기에는 총 7500명의 병사가 있었다고 한다.


  팔기군의 깃발은 1642년에 확립되었으며 그 중 정황기(正黃旗), 양황기(鑲黃旗), 정백기(正白旗)는 황제 직속부대이며 

나머지 5개인 양백기(鑲白旗), 정홍기(正紅旗), 양홍기(鑲紅旗), 정남기(正藍旗), 양남기(鑲藍旗) 등은 제후들이 지휘했다.


18세기까지 팔기는 청에서 특권을 누렸으나 19세기에 이르러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었다.






청의 대정전(大政殿)

청 태조 누르하치에 의해서 지어진 정전으로 누르하치는 이 곳에서 대전의식을 거행했으며 

칙서를 반포하고, 군사 출정 선포, 개선군 환영행사, 황제 즉위식 등이 열렸던 곳으로 청나라는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겼던 정전이다.   

실제로 청나라 두 번 째 황제인 태종 홍타이지도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명에 대한 사대주의에 빠져 50만 명의 포로가 잡혀가고 전 국토가 쑥대밭에 되었던 병자호란이 일어나던 해 초,

1636년 4월에 청 태종 홍타이지는 이 대정전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


다른 외국 사신들은 황제에 대한 예를 갖추며 무릎을 꿇었다는데 조선 사신들은 황제란 명의 황제 밖에 있을 수 없다 하여 끝까지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한다. 청의 신하들은 조선 사신들의 행동을 무례하다 하여 목을 베자 하였으나, 산해관을 넘어 명을 공격할 때 후방에서 조선이 공격할 것을 두려워 한 태종은 불필요한 충돌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해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사신을 달래서 칙서를 주어 조선으로 보냈는데, 청나라가 황제국이라 칭한 칙서를

뼛속까지 명에 대한 사대주의로 가득찼던 조선 사신은 여관에 잃어버리고 왔다는 핑계로 다른 종이에 옮겨써서 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그 해 조선은 청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고 청 태종에게 항복했다.




대정전의 구조는 간단하게 말해서

2층 8각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하늘로 뾰족하게 솟은 형태의 대정전 지붕





대정전 내 용상






대정전에서 바라 본 십왕정의 모습


[심양고궁 다른 글 보기]


2012/07/16 - [Abroad/[2012] 만주] - [2012.07.05/심양] 만주족 제국의 잉태, 청 심양고궁(中)


2012/07/16 - [Abroad/[2012] 만주] - [2012.07.05/심양] 만주족 제국의 잉태, 청 심양고궁(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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