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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세조의 발자취를 따라서, 오대산 국립공원(上)

그의 한국발자취/[2009] 國立公園

by 그라나도 2010. 2. 1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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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형 국립공원 등정 프로젝트의 제 14번째 산으로 오대산을 다녀왔다.
이제 남은 곳이 오대산과 한라산 뿐이었는데, 한라산을 가려면 어느정도 날을 잡아야 하는데,
이래저래 학교 나가고 하다보면 2월 초에 잠시 학교에 가지 않는 시기에는 한라산을 갈 수 없기에,
오대산 국립공원을 다녀오게 되었다.

하지만 오대산 국립공원 역시 부산과는 엄청 거리가 있는 강원도에 있기 때문에 등정을 하려고 하면은 새벽에 가서 산만 오르고 오지 않는 이상 갔다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3일날 올라가서 4일날 등정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아침 9시에 부산에서 출발해 고속도로를 타고 타서 약 5시간 만에 도착했다.
빠르게 가면 5시간 만에 갈 수 있으리라 예상은 했었는데, 평일이라 도로에 차가 없었기 때문인지, 그렇게 빨리 갈 수 있었다.

내일도 등정 뒤에 곧바로 부산에 내려와야 하기에, 등정 외에는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없다는 판단 아래,
3일날 주변에 유적들을 답사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오대산은 크게 월정사 지구와 소금강 지구 두 곳으로 나누어진다.
일반적으로 경관의 수려함 등을 이야기를 하면 소금강 지구 쪽을 꼽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정상 등반과 여러 문화 유적 탐방이기 때문에 이번 방문에선 월정사 지구 쪽으로 가게 되었다.

오대산 국립공원에 들어서, 월정사 지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국립공원에 있는 문화유적들이 다 그렇듯,
매표소가 있다. 이것은 5대 암자의 본산인 월정사가 징수하는 것인데, 다른 곳과는 달리,
이 길을 통해서만 월정사와 그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표를 끊을 때는 주차증도 포함이 된다.
처음에 이 곳을 지날 때는 내일 들어올려면 내일 다시 끊어야 된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부산에서 이곳까지 왔다는 점을 부각시켜 하루만 끊고 들어가게 되었다.

이 글 다음에 올릴 하(下)편에 보면 지도를 쓰겠지만,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들어가면 먼저 월정사 전나무숲길이 있고, 그 곳을 지나 이 주위 조계종의 본산인 월정사가 있다.
그리고 월정사를 지나 수 km를 다시 가면은 나오는 것이 상원사인데, 이 상원사쪽 등정로를 통해서 적멸보궁과 정상인 비로봉에 갈 수 있다.

어짜피 하룻밤을 묵으려면 다시 이 지구에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먼저 안쪽부터 둘러보기로 하고 상원사를 먼저 방문했다.
상원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고 300mf를 걸어 상원사 방향으로 걸어올라 갔다.

입구에는 뭔 이상한 말뚝 같은 게 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옆의 팻말을 보면 당연히 한 번쯤은 멈추게 될 것.

이것은 관대(冠帶)걸이라고 하는 것이다.
조선 초 세조대왕이 목욕을 할 때 관대를 걸어놓은 곳이라나.
이전에 속리산 글을 쓸 때, 법주사 월광태자 이야기가 세조랑 관련 있는 것에서 그게 뭐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는 다르니 했었는데,
(차차 쓰겠지만) 내가 헷갈렸던 것이고 그 이야기의 관련된 장소는 바로 오대산이었다.

300m 정도 가면 긴 돌계단을 따라 상원사로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돌계단을 다 올라가 오른쪽으로 몸을 틀면 나오는 길의 천장에는 이런 그림이 있다.
불교그림을 탱화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런 것을 탱화라 칭하면 맞는 지 모르겠다. 섣부른 지식은 화를 부르기 때문에 여기서 마치겠다.
참,, 서양 유적의 천장 벽화를 프레스코화라고 하는 것과 어떻게 그리는 건지도 알면서 우리 것도 모르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상원사가 1000년 사찰이라고 하지만, 이 그림을 그린지는 그닥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
뭐 그림의 색이나 단청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말이다. 무튼 한글로 글귀가 쓰여져 있다.

이 곳을 지나 나오면 이렇게 여러 개의 건물이 펼쳐져 있다.

개중 가장 가까이 있는 게 바로 이 건물인데 이 안에는

국보 제 36호인 상원사 동종이 걸려 있다.

상원사 동종은 현존하는 한국종중 가장 오래된 종이라고 한다.
만들어진 년도가 신라 성덕왕 24년인 725년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제일 오래됐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나보다. 하깃, 성덕(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종이니 당연히 성덕왕 이후에 만들어졌을건데, 성덕왕대에 만들어진 이 종보다 늦게 만들어진 것은 당연한 것인가? 무튼 그 때 만들어졌고, 조선 8대 예종 원년(1469)에 이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아들인 예종이 아버지 세조가 그토록 좋아했던 오대산에 옮겨놓은 것일까?

음통이 있는 종뉴아래에 안으로 오므라 든 종신이 연결된 형태라고 설명되어있다. 
이상적인 비례와 안정감이 있는 구조, 풍부한 양감과 함께 세부적인 묘사 수법도 매우 사실적이라 하는데, 특히 종의 몸체 중간에 있는 비천상을 보면 확실히 그런 게 느껴진다. (위로 올라가서 다시 확인하시라) 구름 위에서 천의 자락을 휘날리며 공후와 생을 연주하는 모습인데 볼록한 두 뺨과 유연한 신체에 걸친 천의 등은 8세기 초의 이상적 사실풍의 불교조각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문수동자 상이 있는 문수전이다.
문수동자상은 국보 제221호이다. 참고적으로 이 상원사에는 국보가 2개, 보물이 2개가 있다.
상원사, 월정사. 그리고 조선 7대 세조대왕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속리산 법주사에서 헷갈렸던 일화가 바로 이곳에서 있었던 일화인 것.
세조가 즉위 10년만에 등창을 얻게 되자 신미대사의 권유로 병 치료를 위해 오대산에 오게 되었다는 것.
상원사에 도착한 다음날 몸을 씻으려고 계곡물에 몸을 담그던 중에 지나가던 동자에게 몸을 밀어달라고 부탁했단다.
그 때 세조가 그 동자에게 임금의 몸을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자, 동자가 세조에게 대왕도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말하지 말라 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 뒤 신기하게도 등창은 나았다 한다. 너무나도 놀란 세조가 동자의 얼굴을 그리려고 했으나 화공이 없었단다.
그 때 어떤 노승이 나타나 자신이 그리겠다 하면서 설명도 듣지 않고 그림을 그렸는데, 너무나도 모슴이 똑같았다고 한다. 세조가 놀라 스님이 오신 곳이 어디냐고 하자 영산회상에서 왔다고 하고는 곧 구름을 타고 하늘로 갔다 한다. 이 노승은 문수보살이 화현한 것이라고 하며, 세조는 두 번이나 문수보살을 친견한 것이란다. 이후 세조에 의해 1466년 문수동자상이 조성되어 이곳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근데 이 이야기를 들으니 왜 문수보살이 여기 나타났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그것은 오대산의 문수보살신앙과 관련되어 있는데, 차후 월정사 이야기를 하면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천장화가 있던 곳 위에는 달마 목상과 종이 있다. 상원사 동종은 국보이니 치긴 뭣하고,
이 종을 치는가 보다.

천장화가 있는 곳을 지나 왼쪽으로 가면 등산로도 나오고, 또 천주교로 말하면 성물집 같은 곳과 찻집이 나온다.
이렇게 아늑한 곳에서 자연을 바라보며 차 한 잔 마시고 싶었으나 해 떨어지기 전에 월정사도 가 보아야 하기 때문에 가 보지도 않고 나왔다.


차를 타고 월정사를 지나 거의 매표소 입구까지 갔다.
매표소 입구 있는 데에는 바로 그 유명한 월정사 전나무숲길이 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는 어느 큰 절이 다 그렇듯, 일주문이 있다.

이 일주문 옆에 팻말을 보고 일주문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저 절마다 있는 입구려니 생각했는데,
가람배치 구조에 따르면 세 개의 문 중 첫번째문으로, 모든 중생이 자유롭게 드나들어라는 의미로 문이 달려 있지 않다고 한다.
월정사 일주문은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배울 수 있는 다포식 양식을 채택하고 있어 공포로 상부의 하중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나타낸다.

현판에는 월정대가람이라고 씌어져있는데, 이는 탄허스님의 친필이라고 한다.
탄허대선사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숨는 것을 막기 위해 국군이 오대산을 불태울 때, 끝까지 상원사를 지키신 것으로 유명한 한암대선사의 밑에서 15년 간 수행한 스님이시다.


지금은 그렇게 유명한 이 전나무숲길도 전에는 여러모로 훼손되어 있었나 보더라.
복원됐으니 뭐 다행이다.

전나무숲길로 들어가 어느정도 걸으면, 하늘을 향해 끝없이 솟구친 전나무가 우거진 길에 들어서게 된다.

전나무는 소나무과의 상록침염수이기 때문에, 한겨울이지만 여전히 푸르고 싱싱한 잎들이 달려있다.



전나무길을 중간정도가면은 한 개의 건물이 있다. 이 곳은 성황각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 토속신을 모신 사당이다.
이런 사당이 불교사찰 속에 있는 것은 우리가 고교 사회문화시간에 문화융합의 사례로 배우는 칠성각, 산신각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월정사 측에서 단 팻말에는 모든 사상을 포용하고자 하는 불교의 자세라고 하지만, 말그대로 문화 융합, 한국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전통무속신앙과 합쳐진 것인 거다. 국사당, 국사단, 가람당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이 나무는 2006년 10월 경에 쓰러진 전나무숲의 최고령 전나무라고 한다.
이미 쓰러져 썩어가고 있지만, 얼마나 컸는지 그 흔적이 보여주고 있다.

확실히 2월은 맞았다. 얼음이 서서히 녹아가면서 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2월 3,4일은 아직 추위가 마지막 맹위를 떨치던 때, 역시 추웠다.
추운 건 둘째치고, 카메라 배터리가 방전되어 버리는 게 정말...
루믹스도 별 수는 없더라.

완전 한 겨울에 제대로 눈이 내려서 소백산처럼 눈꽃을 이루고 있었다면 또 그것대로 무지 아름다웠을 것 같다.
하지만 푸른 이 길도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전나무숲길이라고 해서 전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낙엽수도 있기 때문에, 또 가을 단풍철에 오면 그것만의 아름다움도 또 절경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전나무숲길은 사시사철 올 만한 곳이라는 거다.

전나무숲길을 지나 월정사 본 건물에 도착했다.
그치만 정문쪽으로 들어갈려고 돌아서 갔다.

정문이 이쪽.
오대산 주변 오대 암자의 근거지인 조계종 본산 답게, 입구부터 웅장하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중국에도 오대산이 있는가 보더라.)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셔와 적멸보궁에 봉안한 뒤 이곳에 초가를 지은 것부터 월정사가 시작했다고 한다. 이것이 아까 위에서 왜 하필이면 문수보살이 나타났는가의 이유가 된다. 사실 월정사가 지어지는데 문수보살이 뭐 여러번 나타났다고 하는데, 그건 확실히 기억도 나지 않고, 또 방문하셔서 성보박물관에 가시면 알 수 있기 때문에 생략하겠다. 무튼 지어질 때부터 문수보살과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 이 곳 월정사, 그리고 오대산인 것이다.

아울러 오대산의 오대라는 것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
오대는 다섯 개의 봉우리에 각각 대가 있어 오대라고 하는데, 이 오대에는 각각 암자가 있으니, 통칭하여 오대암자라고 한다.
동대 만월산엔 관세음보살, 서대 장령산에는 대세지보살, 남대 기린산에는 지장보살, 북대 상왕산에는 미륵보살, 상원사에는 문수보살이 각각 일만보살로 화현하여 상주설법하고 중대에는 오대신앙의 근거지이자 석가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적멸보궁이 있다.

법당 적광전 앞에 가니 여러 사람의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 두 대가 있고 어떤 여자분이 적광전 계단을 내려오며 영어로 무어라고 하시는데,
아마 해외에 우리나라의 명승지를 소개하거나, 또는 아리랑TV 같은 데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영어로 말하고 있었으니 그렇겠지. 뉴스나 방송 같은 거 촬영하는 거, 중학교 때 경찰서 앞에서 KNN 차주혁 기자님이 촬영하는 거 본 뒤로는 두번째로 보는거다.

월정사에서 가장 큰 법당인 적광전이다.
팔각지붕에 다포계 양식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원래 과거 7불을 모신 칠불보전이 있던 자리라고 하나, 앞에서 이야기 했듯, 한국전쟁 당시에 소실되어 1968년 주지인 만화스님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원래 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것이 통례라고 하지만, 여기는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다. 원래는 이게 대웅전이었지만, 화엄경에 조예가 깊었던 탄허대선사의 오대산수련원을 기념하기 위해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의미로 현판을 적광전으로 고쳐 달았기 때문이란다.




적광전 바로 앞에 있는 이 높은 탑은 국보 제 48호인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다.
북쪽 지방에서 주로 유행했던 다각 다층 석탑의 하나로 고려 초기 석탑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한다.



월정사에 있는 약수이다. 해발 1000m에서 내려오는 물이라고 하는데,
단맛이 나는 게 특징이라더니 확실히 물이 달긴 좀 달다.
뭐 얼어 있어서 시원했던 게 좋았지만.

월정사 내부에는 이렇게 성보박물관이 있다. 이 성보박물관에 들어가면 월정사의 많은 유명한 스님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또 그에 관련된 유물이라던지, 또 여러가지 불교 미술 공에품들도 있다.(물론 무료다)
박물관 폐장 10분전에 들어가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여기서 특히 기억에 남는 거는 고름자국이 묻어있는 명주적삼.
세조의 어의로 추정된다고 한다.

월정사에서 나와 숙소를 정한 뒤,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이 주변에는 당시 송어축제기간이었는데, 그랬던 것도 있고, 특히나 송어가 유명하다고 해서,
송어를 먹으러 가게 되었다.

송어를 먹으러 간 음식점에서 본음식이 나오기 전에 나온 밑반찬.
옥수수인가 감자인가 무튼 그걸로 만든 ? 무언가 특색있는 음식이 있었고, 한가지 또 특이했던 게,
건빵을 튀겨서 준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본 음식인 송어회이다. 붉은 색상을 띈 게 연어나 다랑어를 떠올리게 한다.

개인적으로 회를 굉장히 좋아하지 않지만, 뭐 이 지역 유명한 음식이라니 한 번 먹어봤다.
그러니 음, 뭐라고 할까? 씹히는 맛이 일품인 것도 있고, 내가 회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던, 생선 비린내 같은게 없고 육고기의 비계 부분을 씹을 때 같은 그런 맛이 난다고나 할까? 무튼 내가 먹어 본 회 종류 중에는 제일 맛있는 회였다.

송어회와 함께 나온 게 송어튀김이었다. 그냥 생선튀김 만들 듯이 만든건데,

이것의 맛은 굉장히 연어구이/튀김살의 맛에 가까웠다. 연어가 생선 종류 중에서는 좋아하는 거라 맛나게 먹긴 했지만,
송어만의 특이한 맛은 없어서 다소 아쉽기는 했다.

다 먹고 나니깐 한 마리 하고 남은 대가리로 끓인 매운탕이 나왔다.
감자로 만든 수제비가 들어가 있는 게 특징이기도 했는데, 이 대가리 살도 참 특이했다.
살을 이렇게 익히니깐, 또 대가리라 그런지, 뭐랄까, 해물탕에서 나는 냄새? 게의 맛이랄까? 그런 향이 풍겨 나왔다.

한마리 생선에서 육고기의 질감, 연어의 맛, 게의 맛을 다 느낄 수 있었던 송어. 송어를 먹을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또 먹을 것 같다.

[다음 오대산국립공원 下편에 글이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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