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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크메르제국의 영화를 기리며.... Angkor. [2010.01.17 in Angkor]

그의 해외발자취/[2010] 17차국청단

by 그라나도 2010. 2. 5.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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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활동을 하던 기간 중, 일요일은 기술학교 학생들도 쉬고, 살라발랏의 학생들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공사하러 가지 않았다. 국청단원들에게  앙코르를 간다면 갈 것인지에 대해서 사전에 의견을 물었는데, 대개 다 가고 싶다고 의견이 나왔다. 나 역시 역사에 관심이 있고, 또 대크메르제국의 영화에 대해서는 일찍이 독서를 하면서 많이 알고 있는지라, 동남아의 패권을 잡았던 크메르제국(Khmer Empire)의 수도였던 앙코르(Angkor)를 꼭 방문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간다는 의견에 동의했고 결국 이 날에 가게 되었다.

천주교에서 일요일에 지내는 교중미사는 가장 중요한 미사로 절대 빠지면 안되는 미사이다.
그런데 이렇게 앙코르를 가게 되면 미사를 드리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이 문제 때문에 신부님께서는 수사님과 상의하여 토요일 미사를 특전미사로 승격시켜 바치게 되었다.

앙코르는 씨엠립 근처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공사를 하는 바탐방과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다.
따라서 바탐방에서 가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이동해야 되서, 4시 가량에 일어나 씻고, 6시 즈음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지금은 단순히 씨엠립에 붙어있는 유적에 불과하지만, 앙코르는 세계 최대의 도시 중 하나였다.
현재 세계의 중심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런던의 예를 들자면 11세기 노르망디 공 윌리엄이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대관식을 올리던 때엔 영국의 수도도 아니었고, 인구 35,000여명 정도가 살던 작은 도시였다.
반면에 같은 시기 앙코르는 주변까지 합쳐 100만의 인구가 사는 도시였고, 우기의 스콜, 타이,베트남 등의 침략에도 아직도 훌륭히 버티고 있을만큼 뛰어난 건물을 만드는 건축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고대,중세를 넘어오면서 인구 백만이 넘은 도시가 손에 꼽힌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 당의 수도 장안,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 정도.)

비록 타이와의 전쟁에서 패한 뒤 프놈펜으로 수도를 옮겨 그 이후 거의 역사에서 지워져 있었기는 하지만, 이 앙코르라는 곳에 위대함도 모르고 앙코르와트가 세계문화유산이니깐, 죽기 전에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하니깐 가봐야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일단 크메르제국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오는 게 과거 동남아를 지배했던 제국의 수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국인이 앙코르 유적에 들어가려면 앙코르 패스가 필요하다. 사진의 장소는 씨엠립서 유적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매표소인데, 20달러를 주고 구매할 수 있다. (관광 가는 것도 아닌데 돈을 많이 들고 갈 필요가 있나 생각하며 55달러 들고 왔는데, 순식간에 반토막났다.) 돌아와서 자세히 찾아보니깐, 1일권인 20달러이고, 2-3일권은 40달러, 4-7일권은 60달러라고 한다.

앙코르 패스의 특이한 점이, 패스를 만들어 줄 때 사진을 찍어, 그 사진을 패스에 인쇄해 준다는 것이다.
그 패스 주인이 그 사람이 맞는지를 확인시켜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기념이 될만한 물건인 것은 맞지 않나 싶다.

패스를 끊고 기다리는 동안 주변에 상점에서 무엇을 파는지 둘러보았다.
대개 어느나라든 유적을 가면은, 그 나라 역사에 관련된 서적을 파고 있다.
캄보디아 역시 예외는 아니지만, 특징이 있다. 특정 시대에 대해서 다룬 책 밖에 없다는 것.
그것은 바로 이 앙코르가 무대가 되었던, 크메르 제국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들과 70년대 크메르루주(Khmer Rouge)치하의 암울했던 시기, 크메르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Pol Pot)에 관한 책이다.

한 곳에서 팔고 있는 책이 하나는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기를 보여주고, 하나는 가장 끔찍한 시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캄보디아의 역사가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대 크메르 제국의 수도 앙코르를 1일만에 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들은 관광을 목적으로 온 것은 아니었고, 1일 밖에는 시간이 없었기에 중요한 유적만 돌아보게 되었다. 가장 먼저 가게 된 곳이 바로 앙코르 톰(Angkor Thom).

앙코르 톰은 1177년 참파의 침공으로 패배해 참파의 지배를 받던 크메르가 얼마 후 자야바르만 7세의 지도 아래 참파군을 격파하고 난 뒤에 세워졌다. 크메르의 개국조(開國祖)라고 할 수 있는 자야바르만 2세가 앙코르에 도읍을 했던 이유가 힌두교를 신봉했던 그가 현인신(現人神)으로서 군림하기 위한 신의 도시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인데, 이런 신의 도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에 교훈을 얻어 성곽을 한충 굳건히 한 도성 재건에 나서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앙코르 톰은 외적의 침입 이후 세워져서 그런지 높이 8m의 성벽과 너비 113m의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사진의 장소는 앙코르 톰으로 들어가는 남쪽의 대문이다.

다리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신과 아수라의 상이 54개씩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유해교반의 신화를 모티브로 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대문의 높이는 25M이며 높이 3m의 보살의 얼굴이 동서남북으로 향하고 있는데 각각의 표정에 희노애락을 담고 있다고 한다.

남문을 걸어갈때, 종종 코끼리를 타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1인당 15분에 10달러라고 한다.
코끼리가 지나가다가 똥을 싸질러놓고 가버리는 경우도 있던 데, 그 경우에는 주변 직원이 와서 황급히 치우긴 하더라.

남대문서 북쪽으로 1.5km 정도 이동하면은 바이얀(Bayon) 사원이 존재한다.
바이얀 사원은 제 1회랑과 제 2회랑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에는 높이 42m의 본전이 있다고 한다.



제 1회랑에는 신과 관련된 벽화가 아닌, 크메르 제국의 전투장면이나 생활상과 같은 것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사진의 조각은 참파와의 전쟁에서 중국과 연합하여 전투해 승리하여 돌아오는 장면을 조각해놓은 부분이다.

이렇게 머리에 상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중국인을 나타낸 것이고,

민둥머리의 사람들이 크메르 제국의 병사이다.

이런 전투를 나타낸 부조 외에도 중국 상인이 크메르에 와서 아랫사람에게 지시를 하는 모습의 부조도 있고, 투견과 투계를 하는 부조 등, 다양한 부조가 있다.

제 1회랑을 지나면 제 2회랑이 나온다. 이 곳에는 창건 당시 회랑엔 불상이 빼곡히 있었다고 한다.
자야바르만 7세가 독실한 불교신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7세가 서거한 후 힌두교 사원으로 바뀌면서 불상을 모두 제거하여 버렸다고 한다.

제 2회랑을 빠져나가면 중앙 본전의 무도장이 나온다.
여기서는 자유시간을 주고 자기들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해 주었는데,

이런 불상이 있었다. 그냥 놓여 있는 불상인가 했는데, 향을 피워 놓은 것을 보니 불공을 드리는 불상인 것.
그것도 그냥 향을 피울 수 있는 게 아니라 돈을 내고 향을 피우게 해 주는 것이었다. 한가지 웃긴 건, 돈을 놓은 자리에 우리나라 천원짜리도 있었다는 것이다. ㅎㅎ

바이얀 사원 나와서 가는 길에는 재밌는 것들이 있었다.
이렇게 앙코르, 앙코르와트의 그림을 그려서 파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물건을 파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처음엔 잘 모르다 보니, 팔찌라던지, 부채 같은 것을 한 개 3달러하는 걸 그대로 주고 샀다.
하지만 이런 잡상인을 대할 때 중요한 것은 에누리.

여기서 에누리를 하니깐 밑도 끝도 없이 깎아졌다.
한 친구는 팔찌 10개 정도 손에 쥐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All 1 dollar. OK?"라고 묻기까지 했었다.
그러니깐 "OK"하는 답이 돌아왔다. 더 웃긴건, 그 친구는 "Okay, Thank you."하고 갈려고 하니깐 다시 열 개 정도를 더 꺼내더니 전부 내밀며 "All 1 dollar!'하고 소리지르는 게 아닌가.

처음 샀던 친구들이 얼마나 바가지를 썼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깐 동남아나 중국에서 길거리 물건 살 때는 기본적으로 물건 가격을 깎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 다음 간 곳은 피미야나까스라는 곳.
앙코르 톰 건설 전 11C 초에 왕궁 중심부에 세워진 힌두교 사원으로 '천상의 궁전'이라는 애칭을 가졌다고 한다. 또한 이 사원에도 전설이 전해진다고 하는데, 이 사원의 중앙 사당에는 머리 아홉 달린 아름다운 뱀신의 정령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국왕은 매일 밤 거르지 않고 이 정령과 밤을 보내야만 했다고 한다. 하룻밤이라도 지나치면 반드시 재앙이 닥쳤다나 뭐라나...

올라가는 길은 여러 방향이 있었는데, 사진과 같은 방향은 굉장히 가파르고 힘들어서 올라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내가 올라가보긴 했는데(사진의 사람이 본인이다.) 힘든건 둘째치고, 돌아보면 무섭다. ㄷㄷㄷ

피미야나까스 위에서 찍은 사진. 아래에 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피미야나까스를 지나서 쭉 걸어가면 바로 이런, 코끼리 테라스가 나온다.
12C 후반에 자야바르만 7세 때 앙코르 톰이 건설되면서 광장과 접한 이 동쪽에는 열병식에 쓰일 대규모 테라스도 건설된 것이다.

근데, 이 이상한 현지 가이드는 여기서 뭐 코끼리 싸움을 관람했다느니 이상한 말을 한다. 코끼리 테라스라고 불리는 이유는 벽면에 코끼리 부조가 연달아 세겨져 있고, 머리 세 개 달린 코끼리 신인 에라완의 모습도 조각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고 하는데 말이다.


앙코르 톰에서 나와 점심 식사를 하고 간 곳은 따 프롬(Ta Prohm)이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 톰을 세우기 전에 모후의 극락왕생을 긱리며 세운 불교사원이라고 한다. 이 사원은 안타깝게도 용수가 성장함에 따라 무너질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따 프롬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이렇게 지뢰피해군인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이 이 곳에 많이 온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리랑을 연주하고 있었다.
캄보디아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크메르 제국의 수도에서, 가장 끔찍한 역사의 피해자들이 또 현재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고 있다는 것. 아이러니하지만, 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따 프롬 내에서도 특별히 유명한 곳이다.
바로 헐리우드 영화 툼레이더가 촬영된 장소인 것.
그나저나, 영화를 찍는 데 세트장도 아니고, 세계 문화 유산에서 했단 말인가?
캄보디아 정부에서 돈을 받고 허가를 내 준 건지는 몰라도, 그것을 위해 보존해야 할 세계 유산이 훼손될 뻔도 했을 수 있게 해준 것.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따 프롬에서부터 개인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온 몸에 두드러기가 돋기 시작한 것. 개인적으로 꽃가루, 집먼지, 진드기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데,
흔히 꽃가루 알레르기가 발생할 때의 증상과 비슷했다. 아무래도 접하지 않았던 열대우림의 어떤 꽃가루의 작용으로 인해 발생했던 게 아닌 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알레르기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따 프롬에서 나와 쭉 돌아서 간 곳은 바로 가장 유명한 그 곳. 앙코르 와트(Angkor Wat)이다.
앙코르 와트는 앞에서 수없이 언급된 자야바르만 7세 훨씬 이전의 왕인 수라야바르만 2세 때 세워진 곳이라고 한다. (참고로 내가 알기로는 수라야바르만 2세 때 크메르 제국의 영역이 가장 넓었고, 최전성기였던 것으로 안다.) 이 앙코르 와트를 세우기 위해 3만여명의 정예장인이 30년에 걸려 완성 시켰다고 한다.
성베드로성당을 세우는 것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고, 유럽을 장악했던 교황의 힘이 무너지게 되고, 신교와 구교가 갈리는 결정적 계기가 될 만큼, 유럽의 힘이 16세기에도 그것 밖에 안됐음에 반해, 12세기 초 이런 것을 무리없이 세운 것을 보면 크메르 제국의 국력은 엄청났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앙코르와트는 제 1회랑, 십자회랑, 제 2회랑, 중앙 사당 이런 구조로 된 아주 큰 사원이다.
하지만 우리가 관광을 목적으로 온 것도 아니었고, 빨리 공사를 하는 바탐방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제 3회랑과 중앙 사당만  관람을 하게 되었다.


중앙 사당 아래의 제 3회랑을 쭉 돌았다. 중앙 사당이 최근에서야 개방이 되었다고 하는데, 올라가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 올라가지는 못하고 아래에서 구경만 하였다.

앙코르 와트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 천추의 한이 될 것 같기도하다.
나올 때는 참배도로 방향으로 나왔다. 이 참배도로는 무려 540m나 펼쳐져 있다.

참배도로 중간 쯤에 있는 연못에서 바라 본 앙코르 와트.
흔히들 앙코르 와트를 촬영한 사진을 보면 이자리에서 촬영한 경우가 많다.

내려오다 보니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공연팀인 듯 싶었다.

앙코르 와트 구경을 다 마친 뒤에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매일같이 바탐방에서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을 먹다가 여기서 입에 맞는 음식을 먹으니 다들 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난 결코 그럴 수가 없는게, 따 프롬부터 시작된 두드러기가 더욱 심해진 것이었다. 원래는 양쪽 팔에만 돋는 정도 였는데, 저녁 먹을 때 즈음엔 온 몸에 퍼졌고, 심지어 얼굴도 울긋불긋하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나마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간지러움은 없었다는 것.

앙코르에서부턴 포이펫에서 의료활동을 하던 의료진이 합류를 했었기 때문에,
전문 의료진에게 가서 상담을 해 보았다. 일단은 알레르기 반응인 것 같다고 알레르기 약을 주었고,
일단은 그것을 복용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곧바로 버스를 타고 바탐방으로 돌아왔다. 이 날 역시 기도 모임 하고 다 했지만, 나는 몸 상태가 이랬기 때문에 방에서 일찍 잠에 들었다. '내일은 괜찮아지겠지'하고 기원하면서 말이다.

[다음 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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