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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주옵시고.... [2010.01.10 - 01.19 In Battambang]

그의 해외발자취/[2010] 17차국청단

by 그라나도 2010. 2. 3.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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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작업 일정을 마치고 나면 미사를 드리게 된다.
주중미사이기 때문인지, 주일미사 때와는 달리 모든 사람이 참가해야 되는 게 아니라 희망하는 사람만 참여하면 되었다.

솔직하게 말해, 이제 고3이 되는 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여기 가면서도 아침에 남들보다 좀 일찍 일어나서, 그리고 좀 더 늦게 자면서 문제지 풀려고 문제지를 들고 왔었다. 결과적으로는 목표한 만큼 하지는 못했다. 무튼 그런 사정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이 시간에 문제를 풀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상황이 사실 그렇진 못했다. 짐이 있는 곳은 인두옹첸인데 미사하고, 저녁식사까지 살라발랏에서 하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그랬기 때문에 나로서는 빠질 이유가 없었다. 빠지면 빠진 사람들끼리 수다 떨고 놀겠지만, 뭐 그렇게 하느니 미사를 드리는 것이 낫겠다 싶은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천주교인이지만 그렇게 열성적인 신자가 아니다. 물론 냉담자도 아니다. 그냥 천주교인으로 매주 미사에 가는 그런 사람인데, 캄보디아 있는 동안 매일 같이 미사를 가다 보니 조금은 열성적으로 바뀐 듯 했다. 여기에는 함께 해주신 신부님과 부제님 덕이 크지 않았나 싶다.

여기와서 가장 깨진 편견 중 하나가 성직자는 재미없다는 것이다. 다 그런 줄 알았는데, 썰렁한 개그를 하시는 신부님이나, 동네 형 같은 푸근한 느낌의 부제님을 만나면서 성직자란 결코 이세상과 유리된 존재가 아니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미사에서 그 분들을 뵙게 되는 것은, 정말 재밌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개그를 하신다고 또 신부님이 신부님이 아니신 것도 아니다. 미사의 강론 시간에는 정말 맘에 와닿는, 또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 주신다. 평소 한국서 미사를 다닐 때 강론할 때를 모자란 잠 보충 시간으로 쓴 게 조금 양심에 찔리기도 했다. (그래서 돌아와서는 경청하고 있다.)

저녁을 먹고 인두옹첸으로 돌아오면, 모두 씻고 난 다음에 9시에 모여 기도모임을 가진다.
성가(성가라 해서 뭐 그레고리오 성가 이런 것처럼 고전적인게 아니라, 청년 미사에서 쓰이는 그런 캐주얼한 곡이랄까?)를 신부님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여러 곡 부르고, 그리고 한 4-5사람 정도 하루 동안 자기가 느낀 것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성모송을 3번 바친 뒤 해산하는, 뭐 그런 기도 모임이었다.

이 때 성가 부르면서 진짜 성가를 많이 외었다. 내가 그 동안 살아오면서 배운 성가보다 더 많을 것이다. 개중에 기억에 남는 곡이라면 두 곡이 있는데, 바로 Give Thanks라는 곡과 하늘에 태양은 못되도 라는 곡이다.

Give Thanks라는 곡은 영어곡인데 이거는 국청단원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곡이다. 이상하게 중독성이 있달까..ㅋ 길가면서도 막 흥얼흥얼거리게 되는 곡이다. 현재 국청단 클럽의 배경음악이 이걸로 되어 있는데, 모두들 같은 생각을 한다. 가수가 부른 저 곡보다 우리 17차 국청단원이 부르는 Give Thanks가 더 좋다고...

하늘에 태양은 못되도는 개인적으로 참 곡이 좋다는 생각이 든 곡이다. 이런 생각 많이 한 듯 싶었다.
이 곡은 큰 역할은 못 해주어도, 작은 곳에서 남을 돕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곡인데,,, 무튼 좋았다.

이후 서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시간은 매우 좋은 시간이었고, 한편으로는 아쉬운 시간이었다.

그 날 다른 친구들이 생각한 바를 들을 수 있었고, 나도 그에 대해서 또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무엇이냐 하면은 내가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말할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동생이 굉장히 붙임성있고 적극적인 애가 있는데, 걔가 거의 말을 했다. 걔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내가 말하는 것은 너무 좀 보잘 것 없지 않나, 너무 간단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 생각을 말하는 게 두려워졌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쉽다.

이 기도 모임을 하면서 좋았던 것이 또 하나 있다.
정기적인 것은 아니었는데, 가끔 우리가 가 있는 이 기간 동안 생일이거나, 또는 축일(천주교 신자가 받는 세례명의 성인의 축일)인 친구, 누나들이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기도 시간에 대놓고 말하는 게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체 그냥 성가를 부르다, 어떤 상황이 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르게 된다. 그러면 그 때 나가 있던 사람들이 케익 대용 초코파이를 들고 와 그 사람들에게 갔다 주고, 그렇게 축하해 주는 것이다.
(여담으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개신교 꺼지만, 뭐 좋은게 좋은거고 해서 쓰는 것 같다. 잘 모르겠다.)

그러면 대개 그 당사자들은 감동을 해서 울음을 터뜨리곤 했는데,
이렇게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이나, 또 그것에 감동받는 사람을 보면서, 정말 이 곳에 온 사람들은 착하구나 생각하며 그들의 情을 느꼈다.

이 교류동안 가장 힘들기도 힘들었던 기간이지만, 또 이들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인 것 같다. 돌아와서 부제님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 2주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1월 9일로 가라고 하면, 기꺼이 그 일들을 다시 할 수 있다. 고 말이다.

[다음 글에서. In Angk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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