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캄보디아, 그리고 사람. [2010.01.10 - 01.19 In Battambang]

그의 해외발자취/[2010] 17차국청단

by 그라나도 2010. 2. 3. 21:38

본문

오전이나 오후의 쉬는 시간이면, 모두들 식당에 가서 과일을 먹고 앉아서 수다를 떨며 쉬었다. 물론 땡볓아래서 몇 시간 일하는 것이 고되기 때문에 말그대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가장 일차적인 목표이었지만, 그것만 해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니었다. 이럴 때 서로서로 잡담을 나누어 가면서 국청단원 서로서로 조금씩 친해지게 되라고 존재하는 것 역시 쉬는 쉬간 이었다.

하지만 이 시간 동안 우리가 했던 가장 뜻깊은 일은 바로 현지 학생들과의 만남이 아닐 수 없었다. 

언젠가 오전 쉬는 시간에, 자원에서 일 좀 할 사람 한 10명 정도를 뽑은 적이 있었다. 놀고 있으면 뭐하냐는 생각으로 설렁설렁 갔었는데, 그 때 우리가 했던 일은 현지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가져 온 초코파이를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현지 학생들은 (뭐 학교에서 시켰겠지만) 감사의 의미로 먼저 돈보스코 성인의 찬가를 불렀고, 그 뒤 우리는 초코파이를 나누어 주었는데, 그 모양새가 마치 노래를 불러주고, 초코파이를 보답으로 주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기껏 200원 가량하는 초코파이 가지고 그러는 것이 우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이 나라 캄보디아의 현실이라는 서글픈 생각도 들었으며, 이런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언젠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의 국민이 방글라데시의 국민이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행복이란 것은 절대 부의 크기에서 오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로, 말그대로 쉬는 시간에는 현지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캄보디아라는 나라가 저개발국가인만큼, 영화 [내마음의풍금]에서 전도연 씨가 초등학생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나이는 훨씬 지났지만, 초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 학생들은 우리랑 또래가 비슷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친구들과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또 이렇게 아주 어린 친구들과는 함께 놀이도 했다.
한 91~93년생이라면 대개 초등학교 때 한 번쯤은 해본 경험이 있는 놀이일 것이다. '드래곤볼'이라고.
뭐 쎄쎄쎄 같은 건데 기 모으고 파하고 이러는 게임이 있다. (구체적인 룰은 아마 지역마다 다를 것이다.)
여기 와서 다른 국청단원들하고 친해지다 보니 게임 같은 걸 많이 했는데,
하도 많은 게임을 하다 보니 질려서 이런 게임까지 생각해 내, 공통의 룰을 정해서 하곤 했다.
근데 이런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현지 초등학생들이 하고 싶었는지, 자기네들끼리 따라 하기도 했었다.

한 재미있는 동생(사진 속 머리 긴 애)이 그런 애들을 끌어 당겨서 같이 하자고 했다.
영어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룰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 기하고 파하는 거, 막는 거 정도만 가르쳐 준다고 해도 제대로 전달됐는 지도 잘 모르는, 룰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상태에서 현지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고, 나중에는 사진처럼 엄청나게 많은 아이들과 함께 했다.

캄보디아라는 국가에서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 자체가 교육을 많이 받았다는 의미. 그런만큼, 여기 초등학생들이 영어를 쓸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렇게, 서로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서로가 마음 속에서 우러나 함께 어울리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되지 않았다.




점심이나 저녁시간에 밥을 먹을 때는 현지 아이들과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학교의 공사의 주된 부분을 맡아주던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있는 돈보스코 기술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돈보스코 기술학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지만, 이 학교는 굉장히 큰 학교이고 캄보디아 내에서도 알아주는 학교이다. 그래서인지 여기 학생들이나 선생님들과는 모두 영어로 대화할 수가 있었다.

한 가지 정말 놀라운 것은 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자신들말론 영어를 배운 지 1,2년 밖에 안 되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영어를 구사하는 데는 10여년 넘게 배운 우리나라 학생들 보다 더욱 능숙했다. 발음이 캄보디아식 발음이라서 알아듣는 데 좀 지장이 많고(한 3-4번 되묻는게 기본이었다.), 물론 배운 기간이 짧기 때문에 한국 학생들보다 고급 어휘를 구사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떨어진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 학생들이 리딩에 초점을 맞추어 영어를 공부하는 것과는 달리, 리스닝과 스피킹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우리보다 더 능숙했던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한국의 교육 제도가 확실히 무언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 초등학생들하고 어울리기 보다는 이 사람들 하고 즐겨 어울렸다. 특히 기술학교 선생님이신 Sin Sorphea와는 매우 돈독한 관계를 맺었었다. 서로의 나라와 역사, 문화 등에 관심을 가지고 문답을 했었다. 나를 비롯한 국청단원들이 몇 가지 캄보디아 말, 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맛있어요 정도의 말만 배워서 사용했는데, 그들도 우리에게 한국말로 Hello를 뭐라하냐, Thank you가 뭐냐, Good bye가 뭐냐 이렇게 물어보고 자기네들 발음대로 그걸 메모해 놓고 볼 때 마다 그렇게 인사해주는 것을 보고 정말 서로가 서로의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Sorphea는 우리 조가 작업한 농업연습장 공사를 했었는데, 그 때 우리가 야자수 주스를 맛있게 먹는 것이 기억이 났는 지, 언젠가 저녁 먹기 전에 기다리고 있을 때, "Jae Yong."하고 불러서는 야자수 주스통을 큰 통 한 통을 주고 나눠 마셔라고 했었다.

해외에서 온 사람이니깐, 호의를 베푼 것도 있겠지만, 우리 역시 그들에게 편견 없이 다가섰기 때문에 그렇게 해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우리나라 사람을 가리켜 인종차별이 심하다고 했는가. 적어도 여기 온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 선진국 한국 국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세계 시민 의식'을 갖추어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Sorphea와는 정말 남다른 관계를 맺었다. 헤어질 때가 다 되어서는 서로 메일과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내가 먼저 적어줬었는데, 그 때 사실 난 아무 생각없이 한국에서 쓰듯이 전화번호를 적어줬다. Sorphea는 반면에 캄보디아에서 전화걸때와 해외전화를 할 때 두가지 모두 다 적어줬었다. 괜시리 좀 미안해지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곧바로는 아니지만 좀 현실로 돌아오고 Sorphea에게 메일을 보내긴 했는데, 휴면 메일이라서 메일이 가지 않는다고 한다. 캄보디아라는 나라의 사정이 그럴 것이라고 충분히 이해는 된다. 다른 친구가 Vandy라는 다른 기술학교 학생과는 연락이 되었다고 하길래 그 쪽에 좀 물어봐달라고 했다.

단순히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가서 건물만 짓고 오는 것.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무런 편견 없이 친구가 되었고, 그 관계를 이어올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이 교류에서 얻은 가장 큰 게 아닐까.

[다음 글에서.]

(호재야 니 사진 좀 썼다. 내가 카메라가 깨져서 몇 장 못 찍어서 말이다. 뭐 내가 다시 포토샵 작업 좀 했으니,
저것만의 저작권은 나에게 있는 게 맞겠지? ㅋㅋ 장난이고, 무튼 일단은 그냥 카피라이트 달아놨으니깐 이해해줘^^)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