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모토 요리토모의 묘에서 내려와선, 예정된 갈 곳이었던, 가마쿠라구에 갔다. 가마쿠라구의 입구는 사진과 같이, 전통적인 맛이라기 보다는, 양철로 된, 뭔가 낡아보는 모습이 다소 아니다. 는 생각은 조금 들더군.
여기도 쓰루가오카 하치만구보단 적지만, 참배 행렬이 줄을 서 있었다. 하치만구처럼 길거리 음식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원래 있던 음식점에 찐빵을 찌고 있었다.
[ 가마쿠라구의 참배 행렬 ]
[ 노리나가 친왕이 갇혀있던 감옥 ]
남조 고다이고 일왕의 아들인 노리나가 친왕이 무로마치 바쿠후의 초대 쇼군, 아시카가 다카우지에게 잡혀 갇혀있었던 감옥이다.
갇혀있다고 쓰여 있는 팻말.
가마쿠라구 메이지일왕의 칙명에 의해 1869년 창건되었다. 일반적인 신사에서 볼 수 있는 붉은색 길과 달리 입구에 있는 흰색 길이 인상적이다. 독특하게 본당에는 사자탈이 상정적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과거 노리나가 친왕이 전쟁시 사자탈의 부적으로 안위를 빌었다는 것에서 유래하여 지금까지 그 전통이 내려오고 있다. 경내에는 본전 외에도 친왕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는 보물전 등이 있으며, 날씨가 좋으면, 가마쿠라구까지 이어지는 한적한 주택가를 걸어보는 것도 좋다.
아시카가다카우지 [足利尊氏(족리존씨), 1305~1358.6.7]
본명은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高氏]이다. 아시카가 가문은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최고의 권력을 가진 무사 집안이었다. 반란을 일으킨 고다이고 천황(재위 1318∼1333)을 진압하다 추종자들과 함께 가마쿠라 정권을 무너뜨리고 천황을 세웠다. 그 공으로 원래 이름인 다카우지[高氏] 대신 천황으로부터 휘(諱)를 받아 다카우지[尊氏]로 개명하였다.
그러나 전국적인 통제권을 갖지 못한 천황에게 불만 세력이 늘어나자 1335년 호조[北條] 가문이 군사를 일으켜 가마쿠라를 탈환하였다. 다카우지는 가마쿠라로 진격해 승리를 거두자 자신을 비난하는 고다이고 천황을 교토[京都]에서 내몰았다. 1338년 고묘 천황[光明天皇]을 옹립하여 스스로 쇼군이라 칭하고 무로마치막부를 열었다. 처음에는 동생 다다요시[直義]와 함께 통치하였으나 1352년 다다요시를 살해하고 일인통치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다다요시와의 세력다툼으로 가문의 결속이 약화되어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와카[和歌]와 렌가[連歌]도 직접 지었고, 불교 발전에도 기여하여 교토에 덴류사[天龍寺] 등 전국적으로 많은 선종(禪宗) 사찰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