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구로 가던 중, 우연히 표지판에서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묘가 있다는 것을 보고 가게 되었다. 가마쿠라 바쿠후(막부)를 세운 초대 쇼군 미나모토 요리토묘의 묘.
미나모토 요리토모를 알고 싶으시면은 먼나라 이웃나라 8권을 보거나, 만화 '차나왕 요시츠네'를 보기를 권한다. (그러나 요시츠네는 요리토모가 주가 아니고, 요시츠네가 주인공이기에,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미나모토 요리토모 [源賴朝(원뢰조), 1147~1199.2.9]
1159년 헤이지[平治]의 난 때 패전한 아버지 요시토모[義朝]를 따라 피난 중 체포되어 간신히 죽음을 면하였으나, 이즈[伊豆]의 히루섬[蛭島]으로 유배되었다. 그 동안 엄한 감시 아래에서도 동지를 규합, 겐지[源氏] 재흥의 시기를 기다렸다.
1180년 모치히토왕[以仁王]으로부터 숙적 헤이시[平氏]를 토벌하라는 밀령을 받고 봉기하였으나, 서전에 실패하여 한때는 신변이 위험하였다. 그러나 곧 겐지 발상의 땅인 도고쿠[東國] 각지에 사는 호족(豪族)의 호응과 일족인 요시나카[義仲], 아우인 노리요리[範賴]·요시쓰네[義經]의 협력으로 세력을 만회하고 가마쿠라를 본거지로 정하였다.
요리토모는 1181년 도고쿠를 겐지, 사이고쿠[西國]를 헤이시에게 분할·지배시켜 함께 충성을 바치도록 진언하였으나, 헤이시의 반대로 실현하지 못하였다. 1183년 교토[京都]에 입성한 요시나카의 횡포가 심해지자 조정은 요리토모의 상경(上京)을 기다려 도고쿠 지배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대의명분을 얻게 된 요리토모는 1184년 요시나카를 토벌하고, 1185년에는 사이고쿠로 패주한 헤이시 일문을 완전 섬멸하였다.
1189년 요시쓰네와 그의 후원자였던 후지와라[藤原] 일문을 멸족시켰고, 1193년에는 노리요리를 멸하여 전국을 장악하였다. 1192년 세이이다이쇼군[征夷大將軍]의 벼슬에 오른 요리토모에 의하여 시작된 일본의 무가정치(武家政治)는 이후 700년 동안 계속되어 메이지유신에 이르렀다.
미나모토 요시츠네(源 義經,1159-1189) 가마쿠라막부(겸창막부)의 제2대 장군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이복동생이며 막부의 판관으로 2인자였다.단노우라 대해전에서 당시로써는 상상할 수도 없던 신출귀몰한 전술과 뛰어난 무예로 평가(平家,헤이케)군을 전멸시키고 막부개창에 지대한 공을 세웠으나,그 무예와 인품을 시기한 형 요리토모의 가신들에게 모함을 받아 영지인 오슈로 쫓겨가,1189년 요리토모의 가신들이 보낸 자객들에게 암살당했다.당시 31세의 젊은 나이였으며,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는 역사 속 무장이기도 하다.그 아름다운 풍모와 무예, 인품은 그에 관한 여러가지 전설을 만들기도 했으며,지금도 일본인들은 그가 죽지 않고 몽고로 건너가 칭기즈 칸이 되었다는 전설을 믿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