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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16 in Suzhou] 호구탑

그의 해외발자취/[2007] 상해,항주,소주

by 그라나도 2007. 8. 3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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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탑.
호구는 원래 춘추전국시대의 오왕 합려의 묘지라고 한다. (관련 고사성어 - 와신상담) 아래에 소개로 나올테지만, 호구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장례 3일째에 백호 한 마리가 나타나 능을 지켰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에 보이는 탑이 바로 호구탑인데, 이 탑은 일명 '동양의 피사의 사탑'이라 불린다. 그러나 피사의 사탑도 가 본 나로써는, 이 탑은 피사의 사탑 처럼 약간 기울어진 듯은 하나, 피사의사탑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먼저, 피사의 사탑은 3층 이상의 설계를 잘못하였기에, 기울어 졌지만, 호구탑의 경우, 지반이 침강하면서 기울어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피사의 사탑은 계속 기울어지고 있으며 현재 역시 받침대를 치우면 쓰러지는 정도이지만, 호구탑의 경우 살짝 기울어진 정도라 사진으로 슬쩍 보았을 경우엔, 안 기울어졌다고 느낄만큼 적게 기울어졌다.

그리고 관람의 문제를 이야기 하자면, 피사의 사탑은 개인 입장은 불가능 하지만, 투어를 끊고서는 (40유로 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피사의 사탑 내부에 입장하여, 최상층까지 올라가볼 수 있다.
그러나 호구탑은 어찌 됬든 가장 최하층만 돌아 볼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올라갈 수 있는데 패키지라 못 올라가지는 않았을 지도 생각해 본다. 과거 파리에 갔을 때, 한국 패키지 여행팀이 나폴레옹 개선문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에서 맴도는 것을 보고 느낀 바이다. )


나는 사진을 찍지 못하였는데, 올라가면서 여러가지 명물의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 점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첫번째, 호구의 입구에 있는 시금석. 이것은 오왕 합려가 한 칼에 잘랐다는 바위이다.
그리고 1000명의 고승들이 올라가 설법을 들었다는 천인석.
진시황이 합려가 아끼던 보검 3000자루를 찾기 위해 판 곳에 물이 고여 생긴 연못 검지 등, 여러 전설이 얽혀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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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탑 1층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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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는 북서쪽으로 5㎞거리에 산당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높이 40m의 언덕인 호구의 정상에는 소주의 상징인 운암사탑 일명 호구탑이 있다. 원래 춘추시대 오나라의 왕 합려의 묘지였는데 호구라는 이름은 장례를 지낸 3일째 되던 날 백호 한마리가 나타나 능을 지켰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소주는 예로부터 명검이 많이 나는 고장으로 유명했다. 호구의 입구를 지나서 올라가면 시검석이 나온다. 이것은 합려가 단칼에 갈랐다는 바위이며, 1천명이 고승의 설법을 들었다는 천인석, 합려가 아끼던 보검 3천자루를 찾기 위해서 진시황제가 파놓은 곳에 물이 고여 생긴 연못 검지등 호기심이 발동하는 전설이 살아숨쉬고, 검지 위쪽에는 송나라(961년)때 만들어진 7층 48m의 호구탑이 풍화에 시달려 약간 비스듬히 기울어져 호구의 역사를 더욱 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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