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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서울] 3.1운동의 메아리가...! 탑골공원

그의 한국발자취/서울,경기

by 그라나도 2012. 9. 25.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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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탈>에서 키쇼카이가 종로 상권을 뺏을 생각을 할 때, '500년 된 상권, 종로 상권'이라고 한다. 조선의 한양 천도 때부터 정조의 개혁 이후에도 금난전권의 혜택을 받으며 굳게 지켜 온 한국의 큰 상권 중 하나인 종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행하고 현재는 강남, 신촌, 홍대, 이태원, 건대입구 등등 수많은 번화가와 상권이 존재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종로 상권은 강력하게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 시대의 서울, 그러니깐 한양이라고 부르는 그 곳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청계천을 기점으로 강북 지역을 일컫는 영역이었고 종로는 그 지역의 중심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종로를 따라 수많은 서울의 명소들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어느 서울의 명소를 가려고 하든 간에 수많은 인파와 차들을 헤치고 가야 한다. 


보신각에서 출발하여 이동하려 한 탑골공원 역시 그렇다. 종로 거리에 있는 탑골 공원은 입구에 가기까지에도 많은 차들이 지나는 도로를 지나쳐 가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공원으로, 3.1운동 때 독립선언문이 발표되고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장소였기도 하다.

그런 역사를 반증이라도 하듯, 탑골공원 입구는 삼일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천도교 제 3세 교주 손병희(1861~1922)

동학의 2대 교조인 최시형의 뒤를 위어 동학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또한 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으로 3.1 독립선언에 서명을 했던 민족운동의 지도자

당시 민족대표 중 많은 사람들은 후일 변절하기도 했으나, 그 이후에도 민족운동에 앞섰던

천도교의 지도자였던 손병희는 만약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도 꿋꿋이 일제에 항거해 왔을 것이다. 




사실 원래 이 자리에는 고려시대에 흥복사가 있었고, 또 조선 세조 대에 지은 원각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 절은 연산군 때 폐지되었고, 이후 고종 34년 영국인 브라운의 설계로 공원이 지어졌다.

1920년 파고다 공원이라고 하여 개원했으나 이후 1991년 본래 지명을 따 이름이 탑골공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진 속의 장소는 팔각정. 1919년 3월 1일에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곳이다.

당시 만세독립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으며 이후 총독부가 무단통치에서 문화식민통치로 통치기조를 전환하게 할 만큼

큰 사건이었다.





원각사지 십층석탑

국보 제 1호 숭례문에 이은 국보 제 2호로 형태가 흔히 볼 수 있는 석탑들 하고 매우 다르게 매우 높고 대리석을 사용했으며 화려한 조각을 했다.

이는 고려시대 경천사 십층석탑과 유사한 형태로 원의 영향을 받은 형태로 말해진다.


여기저기에서 3.1운동의 흔적을 엿 볼 수 있는 탑골 공원.

그 날의 함성이 있었기에 지금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고,

그렇다는 것을 이 곳에 와서 잠시나마 느껴보았다.





Canon - Ixus 310 hs

ⓒ2012 Granado
LEE JAE 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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