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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서울] 600년 수도 서울을 지키는 4대문, 흥인지문

그의 한국발자취/서울,경기

by 그라나도 2012. 9. 2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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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이 시작될 무렵, 그러니깐 학기가 끝나고 만주 여행 가기 전에 서울 돌아다니던 이야기를 이제나 풀게 되었다.

결국 나홀로 서울 여행 계획도 중간에 틀어졌긴 하지만서도 뭐.

한창 더위가 시작되려고 하던 무렵, 아직 장마가 오기 전이라 그런지 파란 하늘을 지녔던 뭐 그런 6월 말이었다.

무작정 찾아간 곳은 바로 동대문.


사실 우리에게 동대문이라고 하면 그 자체 의미로서의 동대문보다는

동대문 의류 시장, 두타들 여러가지 의류 시장으로써 더 의미가 다가온다. 

중국, 일본 여행객들이 이 곳에 와서 옷을 사가는 것만 생각해도 그럼을 당연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뭐 그런 의미에서 나도 가끔 여기에 옷사러 가기는 했지만, 이른 아침에 이 곳을 방문한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내가 이 곳에 찾아가게 된 것은 흥인지문으로써의 동대문.

흥인지문의 역사는 꽤나 오래됐다.

역사는 조선 건국기로 올라간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곧 도읍을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기는데,

옮기면서 성곽을 지으며 동,서,남,북 4개의 대문을 짓는다.

그리고 그 문들에 각각 인의예지라는 유학에서 숭상하는 가치의 이름을 하나씩 부여하는데(물론 백성이 지혜로워서는 안된다 하여 지(知)를 쓰지 않고 숙정문이라 하였다 한다.)

동쪽에 지어지는 이 문에는 인(仁)자를 써서 흥인문이라 불렀다 한다.

그런데 이 이름이 흥인지문으로 지(之)자가 추가된 이유는 동대문 앞의 평평한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흥인지문은 남대문인 숭례문과 더불어 도성의 문 중 가장 큰 규모로 문루를 2층으로 만들었다.

이 문루는 유사시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태조 7년에 지어졌다가 현재 문은 1869년 다시 지은 것이라 하는데, 장식이 많은 19세기 건축 특징을 잘 반영한다고 한다.

또한 적을 막기 위한 반달 모양의 옹성이 있는데 이 역시 흥인지문에만 유일하다고.




하지만 일제에 의해 성곽이 사라져버린 뒤에는 그 자체가 성으로서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그저 옛 문화재 중 하나로 보존되고 있다.

그래서 들어가지 못한다. (숭례문 방화사건도 있고 해서 보호가 삼엄할 것이다.)

하지만 동대문이라는 이름은 우리 일상 속에 남아 의류 시장하면 떠올리는 곳으로 변해 있다.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지 600년이 넘어가고, 그 역사 속에서 도읍을 지키던 동대문, 이제는 사람들의 삶을 터전을 지키고 있다.







Canon - Ixus 310 hs

ⓒ2012 Granado
LEE JAE 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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