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는 것이 좋을까?

하다가 선택하게 된 곳이 바로 연변대학이다.




연길 조선족 자치주에 위치한 민족대학인 연변대학교.

1949년 3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하기 이전부터 조선족들이 힘을 모아 설립되어 문리학, 공학, 의학, 농학의 4개 학부로 출범하였다고 한다.

1958년 의학부와 농학부과 연변의학원과 연변농학원으로 독립한 후, 문리학부(우리나라식으로 하면 문과대학) 중심의 종합대학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원래는 한민족만을 대상으로 하던 대학이었는데, 60년대에 이르러 한족과 다른 민족들도 입학이 가능해졌으며, 1980년대에 이르러 조선어문학, 중국어문학, 외국어문학, 정치학, 역사학, 화학, 물리학, 체육학, 통신학 등 9개 학부와 11개의 전업(한국식으로는 과)으로 정비하고 조선문제연구소를 설치했다. 중국과 한국의 수교 이후 많은 한국 대학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현재는 중국에서 국가중점발전대학으로 선정했다고 하고, 중국 전체의 1700여 개의 종합대학 중 50위 정도의 우수한 대학이라고 한다.

(한국대학이 170-180여개 정도이니 한국이면 한 5위권의 우수한 대학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관련 연구, 그리고 백두산을 둘러싼 자연 연구 분야에 있어서는 중국 대학 중 선두로 꼽힌다고 한다.


다른 민족들도 많이 수학하지만 교수진의 70%가 조선족, 학생의 절반이 조선족인 여전한 민족 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연세대학교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잠언의 구절을 인용해 '진리'와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듯,

이런 것을 통해서 연변대학교가 '자강' '화합' '일신'을 가치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이라는 나라 속에 이질적인 민족으로 살아가면서 '자강'해야 함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화합'하며 살아야 한다는

소수민족의 대학으로써 올바른 교육이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본다.




연변 지역으로 많은 시민단체 및 대학들이 방문을 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알 수 있는 플랑.

한국인 유학생도 상당히 많은 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종합대학 안에 각 단과대가 나누어지는 체계라 그 단과대 건물은 경영대학, 공과대학 이런 식으로 대학이라 칭하는 것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공학원, 이학원 이렇게 학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을 알 수 있었다.




연변대학 본관 

깨끗하게 하얀 빛이 인상적이다.


연변대학을 줄여서 '연대'라고 부른다. 안에도 연대 기념품 판매점 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 현재 내가 재학중인 연세대 역시 줄여서 연대라 하다 보니 괜히 조금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예전에 장춘 위만주국황궁에서 학생증을 제시했을때, 학생증을 보고 그 직원이 내가 연변대학교 학생인 줄 오해했던 해프닝이 생각나기도 했다.

(연세대학교와 연변대학교의 연자가 모두 동일하게 끌 연 자를 사용하고 있다.)







연변대학 도서관



민족문화교육원.

 한민족(조선족들은 우리를 일컫어 조선민족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북한 쪽에 정서가 가깝다고 볼 수 없다.) 문화를 중국 내에서 유지하고 연구하는 시설




정판룡 문학비

정판룡은 조선족 문화를 일구는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연변대학교 부교장을 맡았었고 1997년 3월 KBS해외동포상 학술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비의 내용은 정판룡이 쓴 '고향 떠나 50년' (정판룡의 고향은 전라남도 담양이다)속에 있는 내용.

연변대학을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전해지는 데 그의 마음이 전해지는 비석의 내용이다.




정해룡문학비 옆에 있는 계단.




계단을 올라가면 항일무명영웅기념비가 있다.







이 비석(이라 하기는 특이한 구조인데)의 둘레에 간도 지역에 살았던 한민족들이 항일 투쟁을 한 모습이 음각되어 그려져 있다.

일제 시대, 일본에 대해 무력 저항을 했던 사람들은 으레 만주 지역, 개중에서도 간도 지역으로 와서 항일 투쟁을 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에서 항일 투쟁을 했고, 대표적으로 청산리 대첩, 봉오동 전투 등은 우리 역시도 잘 알고 있다.

20년대 초기의 그런 항쟁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광복하기까지 수십 년 동안 항쟁하면서 사라져 간 수많은 이름없는 용사들,

그들을 기리는 비석.



연변대학 여기저기를 보면서 아직도 민족 교육 의식이 살아있음을 여기저기 느낄 수 있었다.

연변대학을 지나다니면서 만난 조선족 아저씨가 남남북녀 이야기를 하며 농담을 거시는 모습에서 

고국을 떠난지 수십년, 아니 새로운 세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민족의식이 살아있는 것을 보면서

중국에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조선족들에게 감동을 받았다.

짧게 연변에 있는 동안, 연변대학에 오기로 선택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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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그라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