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의 끝에 보면 거대한 문이 있다. 뭐냐고? 광화문 광장 앞에 있으니 광화문이지.

광화문은 조선의 5개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어진 궁이자, 법궁(정궁)으로써 가장 큰 규모를 지닌 경복궁의 정문이다.

(덕수궁과 비교를 해도 똑같은 정문인데 대한문과 광화문의 규모차이는 어마어마하다.)


광화문이 있던 자리에 일제는 을사늑약 이후 조선통감부 건물을 설치했고 여기는 이후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총독부로 이용되었으며,

광복 이후에 중앙청이라 불리었었다. 1968년 복원에 들어가는데 중앙청의 위치 때문에 원래 경복궁의 복원에 문제가 있었으나 철거 이후 그 위치를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광화문 앞에 있는 해치 동상

해치, 또는 해태라고 불리우는 신화 속 동물은 우리 민족의 큰 뿌리인 동북방계 민족들에게 전승되어 오는 신수이다. (중국 문헌 역시 그렇게 기록됨)

성품이 충직한 동물로 사람들이 다투는 것을 보았을 때, 옳지 않은 자를 받아버린다고 한다. 

해치 상이 광화문 앞에 있는 것은 해치가 불을 먹는다는 성격과 서울의 풍수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서울을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한강을 건너있는 관악산은 불의 성질을 가진 산으로, 그 성질을 제어하지 못하면 서울에 불로 인한 피해가 있을 것이라 하여

불을 잡아 먹는 동물인 해치의 상을 세우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숭례문의 현판은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걸어놓았다.)


그런 서울의 특징 때문에 서울 여러 곳에 해치 상은 세워졌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서울시의 상징으로 해치가 사용되고 있다.




광화문을 지나 들어오면 경복궁 관내로 들어서게 된다.

우측에서 표를 끊고 들어갈 수 있는데, 물론 방문자수와 규모면에서 월등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덕수궁은 입장료 1000원인데 반해 경복궁은 3000원이다.


경복궁(景福宮)

조선 태조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일으킨 뒤에 당분간은 고려라는 국호를 유지하면서 개성에 수도를 두고 있었으나,

곧 한양으로 천도를 하게 된다. 왕의 천도에 맞춰 궁을 건설하게 되는데 1394년, 조선의 궁들 중 가장 처음으로 지어지게 된 것이 

바로 이 경복궁. 큰 복을 누리라는 뜻의 '경복'이라는 이름은 정도전이 지은 이름이다.

왕자의 난 이후 다시 개경으로 천도하기도 하면서 궁으로써 확실한 기능을 하지는 못했지만,

세종 이후 조선이 안정되면서 왕이 머무는 법궁으로써의 기능을 확실히 하게 된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복궁은 불타게 되는데 이 경복궁을 다시 짓게 된 것은 구한 말 흥선대원군 집권기.

그러나 무리한 경복궁 중건은 백성들을 힘들게 했으며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된다.

중건된 경복궁이지만 경복궁 내 건청궁에서 을미사변이 발생하면서 고종은 아관파천하게 되고 그 이후 덕수궁에 머물게 되면서

궁의 기능도 상실했다.


국권피탈 이후 일제가 경복궁 내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워서 조선 왕조의 상징을 훼손하고 모욕을 주는 행위를 하였다.

광복 이후 1968년부터 복구를 하기 시작했고,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근정전(勤政殿)

흥례문을 지나 경복궁 관내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건물이자 경복궁의 법궁인 근정전

덕수궁이나 경희궁과는 달리, 흥선대원군이 국가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 지은 것도 있고, 역시나 법궁인 만큼 2층짜리 건물이다.




근정전에서 바라본 도심 방향.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광화문 넘어 보이는 높은 빌딩들이 대도시로써의 서울의 모습도 엿보인다.




경회루(慶會樓)

경복궁이 설치된 이후 경회루 주위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태종 대에 태종이 명하여 경회루를 건설하고 주변에 큰 방지를 만들게 하였다고 한다.

외국 사신을 영접하고 연회를 베풀던 장소로, 그 풍경의 아름다움은 오늘날에 바라보는 우리들 역시도 느끼고 있다.

한국의 목조건축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경회루는 그 단청의 화려함이 연못 그림자에 비치워진 그 모습이 또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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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전(思政殿)

임금이 평상시 업무를 보는 곳으로 조정회의, 업무보고, 경연 등이 열렸다고 한다.

이 곳은 공식 업무 시설로 마루만 깔려 있지만, 좌우의 만춘전과 천추전은 비공식 업무 시설로 온돌방이 있어 왕과 신하에게 편의를 제공했다고 한다.




강녕전(康寧殿)

왕의 침실인 강녕전이다.




나는 아주 어릴 때 경복궁에 온 적이 있었고, 또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경복궁을 따로 온 적이 있었다.

유치원생인지 초등학생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여러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가는 것을 보면서 그 때 생각도 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다시금 경복궁을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향원정(香遠亭)

연못과 함께 있는 2층 6각형의 정자.

이 곳에서는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었는데 바로 한국 최초로 발전소를 설립하여 전기를 사용한 곳이기 때문이다.

1887년 3월 6일 건청궁 전등에 불을 점화하고, 경복궁 750개 전등을 가설 점등하기 위한 전기가 생산된 곳으로

당시 열로 인해 물고기들이 죽어 떠오르기도 했다고.







건청궁(乾淸宮)

1873년 경복궁 중건 완료 후, 국고가 아닌 왕의 사비, 내탕금을 이용해 고종이 새롭게 지은 곳으로 왕의 거처로 쓰인 곳이다.

같은 해에 고종은 친정을 선포하게 되는데, 이것 때문에 건청궁 건립은 흥선대원군의 섭정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독립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고종은 1884년부터 이 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1887년 최초로 전등이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인해 명성황후가 이 건청궁에서 시해당했었다. 

이후 아관파천한 고종은 건청궁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이후 1909년에 완전히 헐리고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들어섰다.

광복 이후 이 자리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있다가 1998년 철거되고 2007년에 복원되었다.


경복궁은 정말 넓은 공간이기 때문에, 경복궁 안의 모든 시설에 대해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곳이 있는 만큼 경복궁은 거대한 곳이고, 과연 500년 조선 왕조의 법궁으로써 그 위엄을 오늘날에도 드러내고 있다.





Canon - Ixus 310 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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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그라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