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영화이야기2012.09.08 22:43







     요새들어 뭐 입대전이라 시간이 많이 남기도 하고 해서, 소설도 많이 읽고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그런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사실 한국 근현대문학을 수능 준비를 하며 마지못해 보았고, 그닥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지 못한 탓에 영화 같은 것도 자주 보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여 전공 공부를 하고 대외활동을 해 보면서 갈수록 느끼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문학적 감성 역시 필요하단 생각이 많이 들었다. 문학적 감성 그 자체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그리고 특정 나라와 특정 시대의 문학이 담는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특성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KBS에서 방영된 수목드라마 <각시탈>이 종영했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 <각시탈>을 원작으로 하여 만든 드라마였다. 캐스팅 논란, 욱일승천기-기미가요 논란 등 여러가지 논쟁이 있었던 작품이지만 마지막 화의 시청률을 22.9%에 닿으면서 새로운 항일 드라마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시탈>이 시작할 때 즈음 'KBS 드라마 5년 주기설'이니 어쩌니 하면서 인터넷 뉴스에서 많이 떠들어댔었다. 2007년경 KBS 수목드라마로 방영되었던 <경성스캔들>과 동일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인공 역시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살다가 항일의 각성을 하게 된다는 포맷이 어느정도 유사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작품 다 훌륭한 작품으로 꼽힌다. 하지만 작품 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전에 시청률이라는 대중의 인기를 알아볼 수 있는 척도로만 쳐다보았을 때는 <경성스캔들>은 한자릿수를 전전했고, <각시탈>은 매 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22.9%로 마무리하였다. 2007년은 현재 2012년에 비해 DMB나 다시 볼 수 있는 방법(P2P사이트 다운로드 등)이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는 두 드라마의 대중적 인기의 격차는 매우 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경성스캔들>은 당시 시청률 40%에 육박하던 SBS의 <쩐의전쟁>과 동시간대에 방영되어 그렇다는 요소도 있지만, 사실 두 드라마가 겹쳐서 방영된 것은 한 달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명확히 <경성스캔들>의 대중적 인기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경성스캔들> 역시 봤었고 이 드라마 또한 훌륭하고 굉장히 재미가 있는 드라마였다. 하지만 왜 유사한 <각시탈>과 <경성스캔들>이라는 두 드라마는 명확한 차이가 나는 것일까?



     물론 최근의 한국과 일본간의 독도와 위안부 문제로 양 국 관계가 차가워졌고 많은 한국국민들이 일본의 뻔뻔한 행태에 분노하고 있다는 국민 정서가 <각시탈>의 흥행을 도운 하나의 요소라 볼 수도 있다. (실제로 2012년 8월 15일 각시탈 방영분의 시작에는 15세 관람 불가 페이지 배경을 독도를 넣는 등, <각시탈> 관계자들이 이런 점에 굉장히 신경을 썼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비슷하기도 하지만 극명히 다른 두 주인공, 이강토와 선우완의 각성이 다르게 드러남이 가장 큰 요소라 생각한다.



     <경성스캔들> 속 주인공 선우완은 드러내고 친일을 하는 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항일에 적극적이지도 않고 비교적 상류층에 속한, 암묵적으로 일제 강점하 사회에서 기득권에 들어있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 보자면 친일도 항일도 아니고, 암울한 1930년대의 분위기 속에 무력한 룸펜의 하나로 자신의 쾌락만을 좇아 살던 그 당시 수많은 지식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런 주인공이 히로인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죽어버린 자신의 형과의 관계 등에서 항일로 각성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화의 부제가 '마음껏 연애하고 마음껏 행복하십시오' 라는 것에서 보이듯, 극의 끝이 대승적인 차원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무력한 룸펜의 한민족으로서의 각성만 이루어지고 있다. 그 각성 이후에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는, 어떤 의미에서 해피 엔딩으로 가고 있는 듯하게 보이기도 하는 작품이다.





  <각시탈>도 초반 설정은 굉장히 비슷하기도 하다. <경성스캔들> 속 선우완이 1930년대 경성 최고의 모던보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고, <각시탈>의 주인공 이강토 역시 1930년대 모던보이로 그려지며 화려한 도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나온다. 하지만 선우완과 이강토는 근본적으로 다름이 있는데, 그것은 선우완은 극 중 세계에서 기득권에 속하는 자였고 무력한 지식인을 대변하고 있었다면, 이강토라는 인물은 극중의 민초를 대신하는 캐릭터로 나라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신의 일신을 위해 아득바득 친일을 해서 살아가는 캐릭터였다.



그런 이강토는 형 이강산이 죽은 뒤에 각시탈을 쓰고 활동을 하게 된다. 그 사이의 이야기에서 이강토가 소승적 차원에서 대승적 차원으로 나아가는데의 연결고리가 부족하다던가, 이야기를 다소 질질끄는 듯한 느낌이 작품의 완전성을 낮추었기는 했지만, 충분히 이 정도의 배경만을 통해서도 선우완과 이강토의 차이가 극명히 보인다. 이강토는 좀 더 극단적인 방향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단순히 각성 하는 게 아니라, 이강토는 <각시탈>의 기획의도처럼 조선의 슈퍼 히어로이다. 어느정도 소극적으로 보이는 항일이었던 선우완과는 달리 민중을 수탈하는 친일파와 일본인들을 '적악여앙'이라는 말을 남기며 징벌하였다. 이런 개인적 차원의 히어로물을 떠나 백범 김구 선생을 모티브로 한 '양백 선생'과 몽양 여운형 선생을 모티브로 한 '동진 선생' 등의 인물을 창조해내고, 단순한 히어로물에서 우리 조상들의 독립 운동과 이야기를 이어나가 좀 더 대승적인 차원으로 극을 끌고 갔다. 마지막 화인 28화 끝장면에서 많은 민중들이 각시탈을 쓰고 무장 만세 운동을 하는 장면. 이게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은 열린 결말이지만, 이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이 극이 구성하고자 했던 대승적 차원의 항일 각성이 집약되고 있다. <경성스캔들> 처럼 룸펜의 지성인으로서의 각성보다는, 모든 민중의 힘으로 우리 나라를 되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런 포인트과 <경성스캔들>과 <각시탈>을 가른 가장 큰 요소라 생각한다. 보통 시청자들이 항일에 대해 다룬 드라마를 본다면 당시의 무력한 지식인인 룸펜의 이야기에 감정 이입하기 보다는 모든 것을 잃고 나라를 위해 맞서 싸우는 민중의 이야기에 좀 더 감정이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 전체적 분위기에서도 차이가 갈린다. <경성스캔들>은 <각시탈>보다 무겁지 않다. 가볍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결말 역시 유쾌하게 끝나고 있다. 하지만 <각시탈>이라는 드라마는 무거운 드라마이다. 극이 종반에 다다를수록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그 중 28화에서 히로인인 오목단이 기무라 슌지의 총에 맞고 죽는 장면은 그런 비장미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다. <각시탈> 제작진이 제작의도 두번째에서 밝힌,


 '죽을 줄 알면서도 나아갔던 진정 장부같은 장부(丈夫)를 사랑했기에 비록 삶은 불행했지만 불후(不朽)의 사랑을 간직한 여자. 그들의 죽어서도 영영 사무칠 아름다운 사랑'


마저 그려내고 있다. 대개 많은 드라마에서 이야기되듯, 한국 사람들은 해피 엔딩보다는 새드 엔딩을 더욱 감정 이입을 하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 많은 시청자에게 이런 비장함이 넘치는 드라마는 무거운 시대를 유쾌하게 다루는 드라마에 비해 더욱 더 마음이 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극 초반의 '득수'나 '계순' 같은 캐릭터가 비열한 조선인을 그리니 어쩌니 하면서 '친일 드라마'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그런 소시민적인 당시 조선인들이 '동진 결사대'가 되어 무장 독립 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자신의 동생을 '동진 결사대'로 보내고 그 뜻을 따르는 누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민중의 각성이라는 부분을 보다 더 강하게 채색시켜 준다.



같은 시각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1930년대라는 암울한 시대를 그리고 있는 <경성스캔들>과 <각시탈> 두 작품 모두 훌륭한 작품임이 틀림없다.

<각시탈>을 본 사람이라면 지금 다시 <경성스캔들>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또 다른 시각에서 같은 시대를 바라볼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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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그라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