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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은 쇄국주의자가 아니다. <한제국건국사>

그의 책이야기/한국문학

by 그라나도 2009. 5. 1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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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국건국사 110점
우리가 국사, 근 현대사 내용 중, 흥선대원군에 대해서 배우면서, 흥선대원군이란 사람에 대해 단순히 쇄국주의자,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지연시킨 사람,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일제강점기를 겪게 만든 사람이라는, 한국사의 죄인 중 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내용 중에서, 흥선대원군은 조선이 청의 속방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의 길을 걷기 위한 포부를 이야기 하면서, 지금 조선이 쇄국을 하고 있는 것은, 끝까지 나라의 문을 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힘을 길러 청, 일본과는 달리, 서구열강과 대등한 위치에 서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을 읽으면서, 과연 흥선대원군이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것 처럼 쇄국주의자 였을까?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1860여년대는 서구열강의 식민지 확장이 한참 진행되던 시기로써, 조선 주위의 국가들을 살펴 보면 우리가 상전으로 모시던 청나라는 제1,2차 아편전쟁을 통해 서구열강에 굴복하여 그 경제가 서서히 잠식되어 가고 사회가 혼란해져 있었으며, 일본의 경우엔 페리제독의 접근으로 인해 미국과 통상 조약을 맺게 되며 막부군과 정부군의 내분을 겪었을 뿐 아니라, 역시 서구열강의 침공을 받아 사회가 매우 혼란하였다.

 세도 정치기에 안동 김씨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상갓집 개'라는 말을 들으며 자신을 낮추고 때를 기다릴 만큼 영민했던 흥선대원군, 아무리 조선의 상황이 세계정세를 읽는 데 어두웠다고 해도, 주변의 청과 일본이 그렇게 되는 것을 보며 무조건 쇄국이 옳다고 생각했을까.

 흥선대원군은 혼란스러운 청과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국내가 정리가 안되어 있는 상황에서 무작정 통상을 했다간 사회가 굉장히 혼란스러워질 뿐 아니라, 서구 열강과의 관계 역시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불평등한 관계가 됨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청과는 달리, 순조 헌종 철종에 걸친 오랜 세도정치기를 겪어 민심이 매우 뒤숭숭했던 당시 조선의 현실에서는, 사태가 더욱 악화되었지 않았을 것인가.

 그런 현실에서, 가장 최선의 방법은 국내의 사회 혼란을 정리하고 폐단을 시정하는 등 개혁을 하고, 분산된 권력을 왕에게 다시 집중하여, 재중앙집권을 이룬 후, 군사적으로도 더욱 체계적이고 강성해져, 비로소 서구열강의 침략에 맞설 수 있는 대등한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때 나라의 문을 열어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삼전도의 굴욕 이후 260여년 동안의 치욕적인 청의 속방의 지위를 탈피하여, 그들과 동등한 위치의 황제국의 지위를 가지려 하지 않았을 까한다. (실제로 흥선대원군은 병인양요 이전 프랑스와 군사적으로 동맹을 맺으려고 하였다. 이는 흥선대원군이 쇄국주의자라 보기 어려운 큰 증거이며, 군사적 선진기술을 받아들여 자강을 이룩하려 했던 증거라 볼 수 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 하지만 만약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지 않고 그대로 자강을 추진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일제 치하의 굴욕에 역사를 겪지 않았을 수도, 또 지금은 세계 최강대국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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