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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9/용정]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이 항일민족교육이 이루어진, 대성중학교

그의 해외발자취/[2012] 만주

by 그라나도 2012. 8. 4.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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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 시내는 그리 넓지 않다. 쉬엄쉬엄 걸어서 대성중학교를 찾아갔다.




과거 KBS '1박 2일 -백두산을 가다-' 편에도 나왔던 곳.

일제시대 광명중학교, 은진중학교, 대성중학교 등 6개의 민족 학교가 1946년 통합되어 용정중학교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




대성중학교 건물



윤동주 시비.

아래에는 서시가 쓰여져 있다.










간도 지역 이주의 역사는 조선 말기 세도 정권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회가 혼란스러워져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었던 함북 지역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 간도, 현재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 지역으로 많이 건너가 밭을 일구고 생계를 일으켜 나갔다. 만주 지역이 청 만주족의 근원이 되는 지역이다보니 봉금 지역으로 설정이 되어 있어 거의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당히 많은 한국인들이 간도 지역에 건너가 생계를 일구며 살았고 청인들은 한국인들을 쫓아내려고 했으나,

대한제국에서는 백두산 정계비의 토문강을 들어 간도는 우리의 영토임을 강하게 주장하며 1904년 이범윤을 간도관리사로 파견하여 함경도에 소속시켜 실질적으로 관리하였다. 

을사늑약 이후 일본 통감부에서는 간도에 파출소를 설치하여 관리하였었으나 1909년 남만주철도 부설권과 푸순 탄광 채굴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협약을 맺어 이 지역을 청에 양도했다. 양도한 이후 파출소를 없애고 일본 총영사관을 설립하여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탄압했다.


을사늑약 이후, 또 그리고 경술국치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간도로 건너 가 살게 되었는데, 이 때는 초기의 농민 위주의 이주보다는 항일 무력 투쟁을 하기 위하여 많은 의병들, 그리고 양반 및 유지들이 건너가서 살게 되었다. 간도에 많은 한국인들이 모여 살면서 그 자치체를 갖추어 간도의 한국 사람들을 관리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는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를 설립한 이야기.


무력 투쟁도 한국이 광복할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는데, 대표적인 전투로는 1921년의 봉오동 전투, 그리고 청산리대첩이 있다.




간도의 민족 교육은 1906년 이상설이 세웠던 서전서숙에서 시작된다.

서전서숙은 통감부 파출소에 의해 없어졌으나 이후 

은진중학, 광명중학, 명신여자중학, 영신중학, 대성중학, 동흥중학 총 6개 민족 학교들이 세워져 간도 지역 조선인들의 민족 교육에 힘썼었다.

이중에는 유교계의 대성중학교와 천도교계의 동흥중학교가 대표적인데, 

이 학교들은 강력한 일제의 탄압에 형식상 일본어 교재를 썼으나 동국사략, 월남망국사 등의 책을 가르쳤고, 

마르크스주의 서적들이 많이 유포되어 있었다고 한다.




일본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이나 한국에서의 3.1 만세운동은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간도 지역 조선인들의 3.13 만세운동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3.1 운동 때 간도 지역의 조선인의 1/3이 참여할 정도로 반일 정서가 컸으며

또한 간도 지역 조선인들은 1919년 3월 13일 모여 독립선언을 발표하고 만세 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3.13 당시 간도 지역 30만 조선인 중 3만여 명 정도가 참여했었고,

일본 총영사관으로 행진하였으나 중국군의 사격에 17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당시 이렇게 운동이 크게 퍼질 수 있었던 것은 민족 교육을 하는 학교들로 인한 것이었다고 한다.




간도 지역의 항일 유격 활동.

항일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 중, 외교적인 전술을 꾀하던 사람들은 상해 임시정부나 미국으로 많이 갔고,

항일 무장 투쟁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만주, 개중에서도 간도, 그리고 연해주로 많이 건너갔다.

많은 항일 유격 활동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우리가 아는 것은 청산리 대첩이나 봉오동 전투이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 국가이며 북한의 맹방이다보니 우익 민족주의계열의 활동보다는

좌익 공산주의계열의 활동을 더욱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대성중학에 소개되어 있는 항일유격활동은 이조린(리자오린)이 이끌었던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동북항일연군은 만주 지역 항일 유격 활동을 하던 공산주의 단체인데,

여기에는 조선 공산주의자들도 많이 속해있었다. 대표적으로는 바로 북한의 주석이 되어 지금 3대째 세습을 해 오는

김일성인데, 김일성은 당시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의 사령관이었다고 한다.

김일성은 보천보 전투를 통해 국내에 들어와 유격을 했던 적이 있어 그 이후로 유명해졌다고.


동북항일연군이 항일 투쟁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민족주의계열의 항일투쟁에 대해 다소 소홀히 다루고 있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다음 관에서는 항일시인 윤동주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윤동주는 용정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람인데, 간도 개척을 이끌던 가문의 사람이며

용정 광명중학교에서 수학을 했었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는 남다르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윤동주 시인은 광명중학교 졸업 이후 연희전문학교 문과 38학번으로 수학했기 때문이다.

(영어영문학과 소속이었고, 지금까지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는 이것을 큰 자부심으로 여긴다.)


한국으로치면 문화해설사로 보이는 분이 연희전문학교라고 설명을 해주시는데, 

우리가 연세대학교 학생들이라고 하니 놀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윤동주 시인은 현재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아리이자 발행하는 

자치 언론지인 '문우(文友)'에서 1939년 그 유명한 시 '자화상'을 발표했었다고 한다.




민주화-인권 운동가로 활동하였던 윤동주 시인의 벗이었던 문익환 목사에 대한 소개도,

그리고 항일 민족 영화인 '아리랑'을 찍은 영화인 나운규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한국이 광복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인 설립된 이후

1952년 9월 3일 연변 조선족 자치구가 세워졌고 1955년 자치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초대 자치구 구장에는 연변대학의 설립자인 주덕해가 맡았다고 한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연길시, 도문시, 용정시, 돈화시, 화룡시, 훈춘시의 6개 시와 

왕청현, 안도현 등 총 2개의 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9년 기준 210여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고,

이중 80여만 명이 조선족이라고 한다.




이 곳들을 지나오면 간도 한인촌 개척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이상설의 특별관이 설치되어 있다.





1906년 용정으로 망명하여 서전서숙을 세워 간도지역 민족교육에 힘을 썼던 이상설은

1907년 고종의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헤이그 특사로 네덜란드 헤이그에 다녀왔었다.

실패로 돌아갔던 이 사건에 대하여 이 전시관에서는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국권피탈이후 국권 회복을 위해 연해주에서 주로 활동하며, 국내진공을 위한 13도 의군을 조직하기도 했었다.

이렇듯 간도와 연해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이상설은 북방 항일 운동의 주요 인물로 꼽힌다는 것을 이 전시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윤보선 대통령 시, 이상설에게 수여된 건국공로 훈장




전시관을 나오면 이렇게 TV가 있어서 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이 TV는 두산에서 기부한 것이었다.

민족 항일 운동의 중심지이자, 그것에 대해 더욱 자세히 다루고 있는

대성중학인만큼 여기에 대한 대기업들의 지원이 꽤 많아 보였다.




여느 관광지처럼 끝에는 기념품점이 있었다.





나중에는 신물나게 볼 수 있었는데, 한국인이 많이 오는 관광지에는 북한의 우표와 북한 돈을 팔고 있었다. 

꽤나 흥미가 가긴 했지만 혹시나 법에 걸리지 않을까 해서 그냥 사지 않았는데

와이파이 되는데서 검색해보니 '남북교역특별조례'에 따라서 북한 돈을 허가없이 

소지할 경우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되 있었다.


그냥 안 사는게 답인듯. 

단동에서 파는 단군 소주나 하얼빈 맥주랑 비슷하다는 대동강 맥주는 한 번 먹어보고 싶었지만




2011년 새롭게 조성된 윤동주 교실.

과거 교실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윤동주의 대표적인 시인 '서시'를 노래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괜시리 연세대학교 응원가 '서시'가 떠올랐다.

(이 역시 윤동주 시인의 시 서시를 사용한 것)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강점기. 

나라 잃고 고향을 떠나 타지에 똘똘 뭉쳐

민족 교육을 해오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대성중학.

가슴이 짠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Canon - Ixus 310 hs
ⓒ2012 Granado
LEE JAE 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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